1901년 3월13일 사상가 함석헌이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1989년 몰(歿). 함석헌은 종교사상가로서, 역사학자로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중운동가로서 20세기 한국사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고향 용천은 일찍부터 기독교가 들어와 자리잡은 농촌 마을이었다.
그가 기독교를 자양분으로 삼아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짧지 않은 삶 속의 부단한 자기 갱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넓은 의미의 기독교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이유가 된 것 같다.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 재학 중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무교회주의에 감화받은 함석헌은 귀국 후에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김교신과 함께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낸다.
이 잡지에 연재한 것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인데, 이 글은 수많은 1970년대 독자들을 감동시킨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원형이다.
이 장편 논문에서 그는 왕권 중심의 사관을 뒤집어 ‘반역자’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바라보았다.
투옥과 석방을 되풀이하며 일제시대를 보낸 함석헌은 광복 뒤 월남했고, 장준하가 내는 ‘사상계’와 자신이 창간한 ‘씨알의 소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문필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함석헌의 진정한 관심은 글쓰기가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 형성’에 있었다. 그는 그 사랑의 공동체 형성을 가로막는 온갖 악에 저항했다.
함석헌은 1961년 이래 군사정권에서 그 악의 발현을 보았고, 그래서 늘 군사정권의 맞은 편에 서 있었다.
1980년대 이후 거리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된 다음에도 그는 학생과 재야의 지식인ㆍ운동가들이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몸을 기대는 언덕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1983년부터 5년에 걸쳐 한길사에서 20권의 전집으로 완간된 바 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