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 홍영희(54)씨와 홍씨의 딸 빛나(26)씨는 나란히 수술대에 누워 손을 꼭 잡은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청각장애인 아버지에게 딸 빛나씨의 간 일부를 이식해 주는 수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떨구자 빛나씨는 “저를 이렇게 키워 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인 걸요”라며 웃음으로 답했다.
아버지 홍씨는 월남전에 참전해 전투 중 고막이 파열돼 보청기 없이는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2급 청각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좌절은 오히려 홍씨 가족을 ‘봉사하는 삶’으로 이끌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1996년 사직한 홍씨는 그 때부터 보청기 수입상을 운영하면서 매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보청기를 700개씩 무료로 나눠 주고 있다. 이런 선행으로 홍씨는 지난 2000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홍씨의 두 딸인 빛나씨와 하나(24)씨는 대학을 마친 뒤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해 각각 청각학 박사와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빛나씨는 “아버지 같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고민하다 내린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2000년 홍씨가 간경화 진단을 받은 뒤 이것이 간암으로 악화해 지난해 말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두 딸은 서로 기증하겠다고 다퉜다.
빛나씨는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되찾아 온 가족이 오래오래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께 8시간에 걸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두 사람은 들어갈 때와 똑같이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수술실을 나왔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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