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교육 자체가 늘 문제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이 대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그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십년 전부터 잘못되기 시작하였으며 날이 갈수록 더욱더 잘못되어 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교육문제로 시끄럽다. 최근에 벌어진 문제들도 그렇다.
수능시험과 이를 둘러싼 여러 교육세력들 간의 갈등, 평준화와 이를 둘러싼 경제기획원과 교육인적자원부 간의 이견, 학교 배정을 둘러싸고 수도권 4개 지역에서 벌어진 학부모들의 철야농성, 고교 재배정, 경기도 교육감의 사퇴, 그리고 전학허용과 전학신청을 위한 철야 줄서기, 교육부 장관의 고등학교 ‘0교시’ 체험으로 야기된 0교시 문제 등등, 모두가 전혀 새롭지 않은, 이미 있어온, 다시 불거진 문제들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해본다. 이 땅의 교육학자, 교육행정가, 교사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그러한 교육정책과 방법이 나왔으므로 문제의 해결과 극복을 위한 방책도 그들의 머리에서 이미 오래 전에 나왔어야 할 게 아닌가.
그리고 평준화 원칙이라는 표현에서 확인되듯이, 교육 문제들은 교육 내적인 원리에 비추어보아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로 확인되는 것들과 교육 외적인 문제들 때문에 문제로 부각된 것들로 구별된다.
평준화는 1974년에 우리 사회의 파괴적 교육열이 빚어낸 과열 입시경쟁의 완화와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 방안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므로 평준화는 교육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로 인해 학교의 학생선발권,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학생의 학습성취와 관심에 따른 교육, 학교의 자율적 교육권 등이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병리 현상의 치료가 학교 교육의 정상화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평준화는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 평준화를 초래하였던 교육 외적인 문제들이 경감되고 극복되기는 커녕, 더 강화하고 커졌다.
그래서 학교의 존재 의미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교육보다 더 커지고 더 멋있는 거대한 사교육이 공교육을 확실하게 호령하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사교육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사교육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나, 공교육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이고 인색하다.
여기서 앞서 질문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되겠지만, 이 땅의 교육학자,교육행정가, 교사들은 우리 사회의 교육과 관련된 병리현상의 치료에 실패했다.
그들은 교육 외적인 문제들에게 치여서 교육 내적인 원리에 따라 교육을 바르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사실 문제가 된 0교시란 처음부터 없으며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등교해서 웃고 떠들고 독서하며 뛰어 놀 수 있도록 일찍이 학교 문을 열어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0교시'란 이상하고 비교육적인 질서를 만들어 강제로 학생을 구속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할 때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강제적인 것은 모두 그것이 자율이란 탈을 썼어도 파괴적이다. 교육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구국의 차원에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학부모도 파괴적 교육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교육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지난 10일 영락교회에서 소강당 지붕이 붕괴되는 사건이 터졌다.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서라벌 고교의 이원형 선생은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학생들을 구했다. 우리 사회엔 참된 교사들이 여전이 많다. 그들로 인해 우리의 많은 교실이 아직은 살아 있다.
오인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