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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유작전 15일부터…닿을수 없는 그리움,화폭에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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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유작전 15일부터…닿을수 없는 그리움,화폭에서 노래

입력
2002.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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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裸婦)로 상징되는 최영림의 세계는 단순히 토속적이라기보다 실향민이 부른 망향 정신의 노래다… 분단시대의 평화, 즉 상처 없는 여체로서 그의 청정무구한 세계를 상징한 것이다.”(평론가 윤범모)실향민 작가, 황토로 그린 나부의 작가 최영림(崔榮林ㆍ1916~1985)의 유작전이 15일부터 4월7일까지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최영림의 유작전은 그간 몇 차례 열렸지만, 이번 전시회는 일반 관객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1950년대 유화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이 망라된 대규모 기획전이다.

평양 출생인 최영림은 보통학교 재학 때부터 판화에 심취했다.

“우리나라 판화도 수백 년 전부터의 전통이 있다. 팔만대장경 판목이나 고서들을 보면 현대의 삽화와 같은 그림판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동서양은 물론이요 세계의 역사상에서 찬란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뒷날 그는 판화와 한국적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38년 도쿄 태평양 미술학교에서 그가 전공한 것도 판화이며 1958년 그가 결성한 ‘한국판화협회’는 국내 최초의 판화단체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삶과 작품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가족을 남기고 단신 월남한 그는 제주도, 부산, 마산을 떠돌며 거칠고 어두운 화풍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최영림의 이른바 ‘흑색 시대’의 풍경과 인물은 전쟁의 참화와 이산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풍만하면서도 토속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체, 나부와 동물, 어린이가 어우러진 모습도 그의 망향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가 평생 그리워했던 모순도 가식도 고통도 없는 고향의 세계, 원초적 세계를 드러낸 것이었다. 모래와 흙을 혼합한 독특한 질감으로 그는 한민족의 황토 문화를 표현했다.

“나는 곧잘 고가(古家)가 헐리는 데 가서, 오랜 흙벽의 황토를 구해다가 곱게 가루를 내어 캔버스에 바른 밑그림을 놓고 구상을 한다.”

그의 이 ‘황색 시대’에 개인적 고통을우리 전래의 민담ㆍ설화를 통해서 걸러, 소재와 주제 양면 공히 원초적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는 소장하고 있던 자신의 작품 5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고 7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가나아트센터는 본전시와 함께 특별전시관에서 그가 쓰던 표주박, 찻잔, 도장, 벼루, 의복 등의 유품전을 열어 생활인으로서 그의 면모도 되돌아본다. 4월19일~5월5일에는 부산 코리아아트 갤러리에서 순회전도 연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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