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적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은 덕수궁 옛 왕실터에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을 짓는 계획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1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주한미대사관측은 지난해 말 서울 정동 옛 덕수궁터(옛 경기여고 부지)에 이르면 올해부터 지상 15층, 지하2층, 연면적 1만6,300여평 규모의 대사관 건물을 신축키로 결정,현재 서울시의 교통영향 평가가 진행중이다.
미대사관측은 2006년까지 신축을 완료하고 서울 세종로의 현 대사관을 이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영원히 땅속에 묻히고 민족정기도 맥이 끊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미대사관 이전 부지중 논란의 핵심은 구한말 조선왕실이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던 선원전(璿源殿) 자리.
선원전은 1922년 일제가 역사 말살을 위해 덕수궁을 유린하고 현재의 덕수궁 돌담 길을 만들 때 헐린 뒤 그 자리에 경성제일여고(해방 후 경기여고)가 들어섰다.
이후 경기여고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소유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뒤 공터로 남아 있다.
논문을 통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목원대 김정동(金晶東ㆍ건축도시공학) 교수는 “이 곳은 일제가 유물까지 흙으로 덮고 새 건물을 지었던 곳”이라며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선원전 터에 미대사관이 들어서면 황실터의 유적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겨레문화답사연합 강임산(姜林汕) 대표도 “94년 무더기 유물이 출토됐던 경희궁 터 처럼 유구(遺構ㆍ과거 토목건축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잔존물)와 유물이 나올 것이 분명한 이 곳에 미 대사관을 짓는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대사관 신축부지가 선원전 터였다는 사실은 최근 알았고 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다”며 “토지 소유권을 갖고 있는 미대사관측이 구체적인 건축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여서 문화재 발굴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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