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널찍한 사무실에는 뜻밖에 요즘 봄 햇살 같은 나른함이 감돈다. 한가로이 얘기들을 나누고 있거나, 인터넷 게임을 하는 모습도 눈에 뜨인다. 사명감과 긴장감이 연상되는 명칭과는 영 다른 분위기다.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저 사람들 중요 사건을 8개월 째 손도 안대고 있어요.” 한 민간조사관이파견 조사관들을 가리키며 머리를 저었다.
현재 위원회의 조사관은 민간인 25명에, 군 경찰 국정원 법무부 검찰 등에서 파견된 27명을 합해 모두 52명.
하지만 핵심사안은 아무래도 전문 수사기술과 경험을 갖춘 파견 조사관들에게 크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도무지 이들이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실제로 한 경찰 조사관은 상부에 올리는 동향보고에만 신경쓰다 문제가 된 적이 있고, 군 조사관은최근 “의문사로만 국한 돼야지, 왜 녹화사업까지 손을 대느냐”고 조사방향에 정면 반발하기도 했다.
옛 수사검사의 소환을 검찰 조사관이 가로막는 일이 빚어졌는가 하면, 위원회에 출두한 모 전직 교도관은 “이미 며칠전 법무부로부터 조사받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순진하게 털어 놓기도 했다.
하기야 조사란 것이 대개 ‘친정’의 옛 비리와 직접 관련돼 있는데다, 곧 복귀해야 할 처지니 이들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을 삭이며 수년에서 수십년을 기다려온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도리가 아니다.
무엇보다조사 의뢰된 의문사 대상자들 상당수가 이런 식의 왜곡된 집단 이기주의에 희생된 이들 아닌가.
이진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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