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하루 만이네요.”성우 박기량(44)은 8일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난 성우 장정진(50)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여섯 개 쇼ㆍ오락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는 두 사람. 바로 전날도 SBS 녹음실에서 잠깐 스치듯이 만났다고 했다.
장정진은 ‘뮤직플러스’ ‘한중일 삼국지’(KBS),‘생방송 인기가요’ ‘호기심 천국’ ‘류시원ㆍ황현정의 나우’ ‘쇼 일요천하’(SBS)에, 박기량은 ‘VJ특공대’ ‘쇼 파워 비디오’(KBS), ‘이성미ㆍ이경실의 진실게임’, ‘장미의 이름’(SBS), ‘와!ⓔ멋진 세상’(MBC) 등에 출연하고 있다.
“우리를 포함해 안지환(MBC) 김영진, 김일(KBS) 등이 쇼ㆍ오락프로그램은 다 말아먹고 있지.”
쇼ㆍ오락프로그램에 성우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 ‘쇼쇼쇼’ ‘쇼! 일요특급’등의 오프닝은 그들의 몫이었다.
장정진은 “당시보다 외화시리즈가 줄어 더빙 연기를 접하기 어렵게 되다보니 쇼ㆍ오락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쇼ㆍ오락 프로그램에 맞는 목소리도 따로 있다. “목소리 연기이상의 무엇인가 필요하다.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홍두깨선생님의 코믹한 목소리의 주인공 장정진은 ‘생방송 인기가요’와 같은 현장성 강한 음악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차분해진다.
무대 MC석 바로 밑, 원고를 읽을 정도의 조명만 있는 곳이 그의 자리이다. 그가 조명을 받을 일은 없지만, 그의 소개 없이 출연가수가 무대에 서는 일도 없다.
“10대 팬들의 함성에 내 목소리가 묻혀도 일정한 톤을 유지해야 한다. 그건 관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박기량은 ‘장미의 이름’의 ‘맛 대맛’에서 금방이라도 군침이 돌게 음식을 소개한다.
“그냥 ‘짠 맛’이 아니라, ‘짭쪼롬한 맛’이라고 하죠. 그것도 ‘짭’에 강세를 둡니다.” 그의내레이션 특징은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몰아치는 것.
‘개그 콘서트’갈갈이 박준형이 흉내내는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목소리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장정진은 박기량의 목소리에 대해 “소리가 굉장히 매끄러워. 느끼하다고 느낄 정도로. 선후배를 통틀어 찾기 힘든 색깔이지”라고 평가한다.
박기량은 “선배님은 여유가 있어요. 처음이나 끝이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여유를 갖고 몰입하게 만들죠”라고 맞받는다. 이처럼 음색이 다르기에 장정진은 주로 만화영화 더빙을, 박기량은 외화 더빙을 했다.
장정진은 1977년 TBC공채로, 박기량은 1982년 MBC공채로 성우에 데뷔했다. 20년 넘은 그들의 경력을 원하는 분야는 방송만이 아니다.
박기량은 “‘성공시대’의 목소리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이 많이 찾는다”고 털어놓는다.
연설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의 라디오 지지연설까지 했다.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공식행사 진행도 할 예정이다.
1997년부터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행사의 오프닝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성우들의 축구모임인 ‘목소리 축구단’의 창단멤버로 골키퍼로 활동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됐다.
둘의 목소리는 타고났다. 방송과 실제 말할 때가 똑같다. 장정진은 심지어 술과 담배까지 한다.
인터뷰 한 시간 동안 태운 담배만 세 개비. 원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펑크를 낸 적도 한번씩 있었다.
“홍두깨는 목젖이 드러날 정도로 소리를 질러야 해요. 1988년이던가. 두 편을 한꺼번에 뜨고 나니 목소리가 안나오더라고요.”(장정진)
“2000년 유고슬라비아 축구팀 초청 경기를 하루 앞두고 노래방에 갔다가 목이 잠겨버렸죠.”(박기량)
이런 때를 대비해 장정진은 소금양치질을 하고, 박기량은 코에 죽염증기를 쐬곤 한다.
목소리만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두 사람. 그들의 자리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카메라 뒤편에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현장분위기가 살아있는‘라이브’가 즐겁다고 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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