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는 그의 큰 딸 근혜씨를 ‘큰 영애’라고 불렀다.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통령 딸을 ‘영애(令愛)’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당시 라디오 방송 등에서 한글풀이로 성가를 높이고 있던 한글학자 한 모씨가 제안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 딸의 호칭을 일반인과 구별지은 이런 아부성 처사에 대해 젊은 기자시절 시큰둥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전에도 영애(令愛)를 ‘윗 사람의 딸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큰 영애의 전성시대’는 아무래도 그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혹독한 유신체제의 후유증으로 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탄에 희생되고 나서다.
졸지에 아내를 잃은 박 대통령은 재혼을 마다하고 각종 의전행사에 장녀로 하여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게 했다.
‘큰 영애’는 자연스럽게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런 박근혜씨가 12월 대통령 선거의 중요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근엄한 부친 곁의 앳된 소녀가 아니라 나이 50세, 국회의원 생활이 만 4년에 이른 어엿한 재선 의원으로서 다.
사실 그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데뷔 때부터 거물대우를 받았다. 이내 이회창 총재의 독주를 시비하는 비주류 간판급 부총재가 됐고 대권반열에 까지 올랐다.
보통사람 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같은 급성장의 배경엔 ‘박정희 향수’와 ‘육영수 신드롬’이 있다.
지난달 28일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그는 ‘여성대통령’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대권도전 의사임은 긴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이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 및 후보경선방식을 탓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어떤 구실로도 당을 박차고 나갔을 ‘여자 이인제’라고 폄하하면서도 동정여론이 생길까 봐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유신의 시퍼런 피해자들이 곧 반응을 보일 터인데 공연히 앞장 설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 씨의 탈당을 계기로 불거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내분양상은 심상치가 않다.
여론조사 결과는 예상과 달리 박 씨가 민주당 표를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신당 윤곽이 뚜렷해 질수록 정치판은 어떤 형태로든 요동을 칠 것이 분명하다.
6월 지방선거전 창당을 시사한 박 씨는 정몽준의원과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 의원 역시 대권을 꿈꾸는 입장이라 조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그의 탈당을 평가한 YS의 의중도 박 씨의 대권도전을 돕겠다는 뜻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이처럼 그의 앞길은 험난하고 불투명하다.
그가 만들 신당이 대권을 창출할지, 아니면 선거철에 반짝하고 사라지는 포말정당의 운명일지 속단하기 어렵다.
그가 ‘반DJ’나 ‘반 이회창’세력을 결집할 만한 ‘그릇’인가에 대해 아직 검증 받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가 기존 정치판의 대안일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일이어야 한다.
벌써 “누구의 딸이라는 것 밖에 더 있느냐”고 터져 나온 볼멘 소리는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서 벗어나 자신이 대통령 감임을 입증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신당이 기존정치의 획기적 변화와 역동적 리더십을 갈망하는 여론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부(負)의 유산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아버지는 영구집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지금까지 박 씨는 ‘유신은 불가피했던 시대상황’이란 정도의 해명을 했다.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방식에 반대해 당을 떠났다면, 1인 지배의 극치인 유신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납득할 만한 매듭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진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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