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걸레스님의 입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걸레스님의 입적

입력
2002.03.12 00:00
0 0

‘걸레스님’ 중광(重光)이 파천황적인 삶을 마감하고 9일 입적했다.26세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 1979년 조계종에서 파문되었으니 ‘입적’이라는 불교 용어가 그에게 합당한 지나 모르겠다.

그의 삶은 항상 성속(聖俗)의 경계를 밟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불문에 들어서는 속세를 그리워하고, 파문 후에는 불교적 세계를 잊지 못했다.

시 ‘나는 걸레’는 그의 내면을 전해 준다.

■ 한참 파격적 기행을 뿌리고 다닐 때 ‘허튼 소리’ ‘청송으로 가는 길’ 등의 자전적 영화에도 출연했으나, 그가 환속한 후 가장 열정을 쏟은 예술분야는 그림이었다.

그의 그림은 어린 아이 같은 원초적 충동과 단순함,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예술적 충동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행위예술(퍼포먼스)로 대신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은 화문집 ‘미친 스님’으로 이 전위적(아방가르드적)인 예술가를 조명했다. 일본은 ‘큰 스님’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했고, 미국 CNN과 일본 NHK도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 세상의 명리와 허위의식을 경멸했던 중광은 해지고 남루한 승려복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모자를 쓰고 다녔다.

‘미친 중’을 자처했던 그는 다분히 위악적이었다.

1970년대 말,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서양화가 장욱진이 “중놈 치고 옷 한 번 제대로 입었네”라고 인사하면서 두 화가의 교감이 시작되었다.

중광은 순진무궁하고 고졸한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대가 장욱진에 대해 ‘중광 도인이 장 도인을 읊은 시’를 쓴다.

■ 성과 속 사이에서 호흡하는 중광의 예술세계는 장욱진의 제자 격인 조각가 이영학, 서양화가 오수환 등과의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환속한 후 중광에게는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영학은 말한다. “그러나, 그 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광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음주와 흡연 등으로 건강을 해친 뒤 강원 백담사 등지에 칩거해 왔다.

20세기 후반의 과도기적인 예술적ㆍ정신적 풍토를 대변하던 예술인 혹은 종교인의 파란 많은 생애이긴 했으나, 중광 같은 인물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에 문득 쓸쓸해진다.

박래부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