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귀국한지 15년 만에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에 한해 남짓 동아리를 틀기위해 처자식, 김치통, 그리고 노트북을 챙겨들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마중 나온 제자의 반가운 인사 속에 우연히 20년 전 유학시절에 귀에 익은 말이 들렸다. “교수님, 이곳은 재미없는 천국이래요. 물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지요.”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아직도 그런 표현이 나올 만하다. 설날 귀향기차표 예매로 밤샘을 해도 표를 사든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하고, 교육망국을 이구동성 비난하지만 돌아서면 불법과외도마다 않고, 농성과 파업으로 온갖 고생을 하고서도 모험담 한마디씩 하고나면 즐거운 해프닝으로 잊어버리는 분위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일면들이다.
한국이 재미있는 지옥이 된 배경에는 분명 나름대로의 업보가 있다. 좁게는 집안관리와 학업관리를잘못한 업보에서 넓게는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을 잘못한 업보가 모여 세계에서 보기 드문 연구대상 국가로 남았다.
최근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이혼 증가율, 과외 부담률, 기업 부도율, 심지어는 최고의 당적 이탈률까지 보이고 있다.
그만큼 법테두리 안에서 인화단결을 도모하기보다 법 테두리 밖에서 의기투합을 모의하는 자들도 많다.
홧김에 이혼하고, 열 받아 과외시키고, 딴 짓 하다 부도내고, 정치판 역시 텃새보다 철새가 더 많으니, 이제는 이혼과 불법과외, 부도와 탈당행위가 마치 장래를 보장받기 위한 요령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가 아무리 지옥처럼 혼란스러워도 재미있게 살 수있는 법 밖의 또 다른 방법이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의 파업도 불법으로 해야 기선제압과 함께 협상하는 맛이 있다. 로비도 불법으로 해야 약효가 있지, 적법하게 하면 아예 로비 축에도 들지 않는다.
월드컵 축제가 눈앞인데, 불법파업에 극적 타결만 기다리는 산업현장, 불법로비에 특별검사만 쳐다보는 정치현장이 그나마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한국경제를 다시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불법조장의 근본원인은 가업, 학업, 사업, 그리고 대업을 이루기 위한 제도와 관점부터 너무나 경직되고 획일화 되어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규제완화와 투명경영은 모든 업(業)이 바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불법과 탈법을 즐기는 풍토 하에서는 글로벌시대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외국자본 유치나 신기술 도입에도 불법과 복사판이 나도는 나라는 기피대상일 뿐 진출 대상이 될수 없다.
얼마 전 동북아의 물류와 금융중심국가를 건설해 보자는 새로운 국가경영 비전이 제시되었지만, 소득세가 15% 미만인 홍콩을 두고 소득세를 무려 45%나 내야 하는 한국에 오려는 외국인은 드물 것이다.
원화가 외국에서 통용되지 않는 한국에 국제금융센터를 만드는 것도 아직은 요원하다. 그래도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결국 특별법, 특별조치, 특별구역이 마련되어야 한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값싼 외국인근로자들을 집안 일에서부터 산업현장전반에 투입해 적법하게 국가경쟁력도 높여주고, 삶의 질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들로부터 세금도 꼬박꼬박 거두어 들인다.
반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근로자들의대 부분은 불법체류자에 불법고용, 그것도 경쟁력과 무관한 유흥가와 3D산업에 몰려 있다.
아마 그들에겐 한국이 정말 무시무시하고 ‘재미없는’ 지옥으로 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을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정서와 민족감정으로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구태부터 버려야할 것이다.
오늘도 한국뉴스에는 재미있는 지옥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대선주자들의 공방이 가득 들어있다.
박기찬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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