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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나 관념에서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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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나 관념에서 저항한다"

입력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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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기념 '깊이읽기''시전집' 출간한 오규원 시인인터뷰 요청을 하자 시인 오규원(61)씨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회갑을 기념해 출간된 ‘오규원 깊이 읽기’(문학과지성사 발행)에 실린 글 몇 편을 꼭 읽고 오기 바란다고 했다.

우문(愚問)은 사양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함께 나온 ‘오규원 시 전집’(전2권)의 작품을 읽어본다.

그의 시는 불편하다. 감정을 낯설게 자극하는 불편함이 아니다.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가 아름답게 짜인 구조물이 아니어서 편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던져진 듯한 시어의 구성이 실상은 지극히 정교하다는 것을 조금 뒤에 깨닫고는, 더욱 당혹스러워진다.

햇볕 좋은 날 일산의 자택에서 만난 시인에게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가 먼저 질문을 했다.

“시란 무엇입니까?”시란 ‘대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우리가 학습한 시의 정의(定義)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노래한다’는 것은 대상을 인간의 관념 속에 가두어 버리는 행위, 인간의 이데올로기로 대상을 규정짓는 일방적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이기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오씨는 세계와 소통하는 길을 찾았다.

랭보의 ‘견자(見者) 시론(詩論)’을 따라 그는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지만, 대상을 언어로 걸러야 한다는 숙명은 변함없다.

오규원 시인은 언어에서 이념을 벗기고 현상을 말갛게 떠올리는 방법을 통해 세계와 만나는 길에 들어선다.

그가 치열하게 실험해 온 ‘날이미지’로서의 시 쓰기가 그렇다.

그래서 그가 토마토 한 개를 바라볼 때, 그것은 생각과 느낌을 깨끗하게 도려낸 정물이 된다.

‘토마토가 있다/ 세 개/ 붉고 둥글다/ 아니 달콤하다/ 그 옆에 나이프/ 아니 달빛’(‘토마토와 나이프-정물b’ 부분).

확실히 그의 시는 ‘주류 문법’에서 비켜선 것이다. 학습된 관념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당연하게도 그의 시는 불편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작업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시인은 ‘전복의 사회학’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지식인이 우월한 사회다. 지식인은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으로, 예술을 관념 아래쪽에 두는 사람이다. 나는 지배 세력에 저항한다. 관념의 강제성에 맞서며 예술가의 편에 선다.”

서울예대 문창과에서 20년 동안 시 창작을 가르쳐온 그를 위해 신경숙 백민석 이원씨 등 제자들은 최근 ‘문학을 꿈꾸던 시절’(세계사 발행)이라는 책도 펴냈다.

학생들에게 엄격한 교수로도 잘 알려진 오씨는 오늘날 서울예대가 문단의 한 주류를 형성하게 한 주역이다.

세밀하고 빡빡한 ‘서울예대 문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 정밀하고 철저한 묘사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묘사는 창작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기초가 안된 사람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구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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