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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프랑스도 외면하는 바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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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프랑스도 외면하는 바르도

입력
2002.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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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9일 오후 6시30분(현지시간) 도빌아시아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 ‘파이란’ 기자 회견이 열리고 있는 CID 상영관 프레스룸에 허름한 차림의 청년 둘이 들어왔다.

이들은 한국의 개고기 도축 사진을 담은 전단을 흩뿌리며 소리를 질렀다. 의자를 쓰러뜨리며, 말리는 사람들도 아랑곳 않았다.

“우리는 처참한 살육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개고기 식용을 반대한다.”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 소속이라고 밝힌 두 청년은 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개장수가 나오는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이 이날 상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도가 이 곳에 올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는 올 필요도 없는 더럽고 하찮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날 소동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어리석은 짓이다. 놀라게 해 미안하다”며 한국 제작진과 취재진에게 사과했다.

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미셸 뒤베드레씨는 “그들은 극우파 바보들”이라며 “신경 쓸 필요 없다. 저런 식의 행동은 브리지트 바르도가 존재를 과시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관습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해온 문화국가 프랑스에서는 개를 먹는 것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멸하는 바르도의 행동이 오히려 ‘미친짓’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한때 프랑스의 상징인 마리안느상의 모델로 프랑스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바르도는 극우주의에 빠짐으로써 조국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날 밤 12시30분, ‘수취인불명’을 본 프랑스인들은 경악과 분노 대신 ‘Tres bien’(매우 좋다)을 거듭했다.

문화국가를 이끄는 힘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전체로서 이해하려는 말없는 대다수에게 있었다.

양은경 생활과학부 기자

도빌(프랑스)에서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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