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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액 납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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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액 납세자들

입력
2002.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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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스타덤에 오른 올해 67세의 영화배우 알랭 들롱은 더 이상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2년 전 프랑스인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절세(節稅)를 위해 스위스로 귀화, ‘알프스의 노인’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 말 영화계 은퇴를 선언하고도 프랑스 인기 민영TV인 TF1의 형사물 시리즈에서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거액의 출연료를 비롯한 수입의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세금을 내는 곳은 스위스다.

■ 프랑스의 톱 모델 레티시아 카스타(23)는 들라크로아의 명화 ‘인민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에 나오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 마리안느에 비유되는 '프랑스의 얼굴' 이다.

그녀는 살인적인 프랑스의 세금을 피해 영국 런던에 호화 아파트를 구입했다가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불세출의 테니스 스타 비요른 보리도 세금 때문에 고국 스웨덴을 떠난 고소득 망명자였다.

■ 부호들 뿐 아니다. 서방 선진국의 기업들도 국가의 조세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류상의 회사를 차려 세금을 빼돌리고 있다.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조세감면과 비실명거래를 앞세워 국제자본을 유혹하는 대표적인 세금 피난처(tax haven)다.

이들의 세금기피 현상을 ‘도덕적 해이’ 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금을 더 거두려는 국가와 조금이라도 덜 내려는 납세자와의 신경전은 근대국가가 성립한 이후 계속돼 온 숨바꼭질이었다.

■ 이번 주는 국세청이 정한 ‘세금 아는 주간’이다. 그러나 고액 납세자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까지 곱지 않다.

한국조세연구원이 30대 이상 납세자 1,0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고액 납세자는 ‘사회 기여도가 큰 사람’이란 응답이 18.9%에 불과한 반면 ‘지금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대답은 25.8%에 달했다.

부자의 재산형성 과정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정서가 심각한 수준이다.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데 부의 합리적 재분배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지는 법이다.

이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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