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낮게 드리운 스카이라인은 이 도시를 말없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평온했다.풍남동에 자리잡은 한옥 마을은 전주가 간직한 진한 멋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다는 오목대에 오르자 800여채의 기와집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검정 삼각모자를 쓴 듯한 모습이 낯설지만 독특했다. 한옥마을의 한 전통 찻집을 들렀을 때는 처마 밑으로 비치는 햇살만큼 차의 향기가 은은했다. 나무로 된 마루나마당 가운데 놓인 우물 등 한옥의 내부 풍경은 고풍스러우면서 아름다웠다.
월드컵 기간 전주에서는 6월 7일 스페인과 파라과이전, 10일 포르투갈과 폴란드전, 17일 16강전 한 경기가 열린다.
8만여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전주를 찾을 예정이라는데,이들에게 한옥의 풍치는 무척 이국적인 경치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거리를 돌아다닐 때는답답했다. 좁은 길도 그렇지만 한옥 대부분이 시멘트 담으로 둘러쳐져 한옥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사전에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이 곳이 한옥마을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찻집 외에 별달리 구경할 것이 없어 아쉬웠다. 다행히 곳곳에서 새 건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전주시가 한옥체험문화관, 전통 문화센터, 전통 공예품전시장 등을 새로 만들어 월드컵 관광객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 때는 곳곳에서 판소리 등의 국악공연이 펼쳐진다고 하니 한옥마을의 활기찬 변신을 기대해 봄 직했다.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이 있었다. 서울의 경복궁에 비하면 단출했지만 도심에서 한국의 전통 유적을 볼 수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안내원의 친절한 설명으로 조선의 역사를 한 가닥 접할 수 있었지만 각 유물에 배치된 영어 안내문의 문장이 엉성했다. “it was happen to the dong hak” 같이 잘못된 문장도 있었다.
전동 성당에 갔을 때도 한글 안내문에 성당 건축연도(1908년)가 나오는데, 영어 안내문에서는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전주에 와서 또 하나 놀랐던것은 이곳이 한국 전통문화의 도시일 뿐 아니라 천주교 성지 도시라는 점이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의 처형장에 세워진 전동성당 뿐아니라 치명자산 성지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유박해 때 일가족이 참사를 당한 이곳에는 세계 유일이라는 ‘동정부부’ 유중철과 이순이의 순교 무덤이 있었다. 독실한 신앙 생활을 숨기기 위해 위장 결혼했다 순교한두 남녀의 무덤 옆에는 ‘예수 마리아 바위’라는 기묘한 암석이 솟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앞에서 보면 예수의 얼굴, 뒤에서 보면 마리아의 형상을 닮은 바위였다.
전주에서 경기를 치르는 나라들이 공교롭게 모두 가톨릭 국가들이다. 이들에게 이곳은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일요일에 전동성당이나 치명자산의 성당에서 관광객이 예배를 볼 수있게 한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톨릭국가라고 해서 모든 관광객이 독실한 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더 그렇다.사실 나에겐 치명자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야가 더 끌렸다. 폴란드는 대부분이 평지로 이뤄져 있어 이렇게 산과 도시가 어울리는 경치가 큰 구경거리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해질녘에 들렀던 김제의 금산사였다. 전주에서 차로 30여분 정도 걸리는 이 사찰은 모악산을 배경으로 한 한폭의 그림 같았다.
정갈하면서도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품과 장엄함이 넘쳤다. 저절로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에 의해 유폐됐던 곳이라는데, 이 곳 한 군데만 구경해도 관광객들은 전주에 온 것을 행운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의 사찰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문화 유산이다.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특히 금산사는 더 절묘했다. 전주시는 가톨릭 국가 관광객을 위해 순교성지 코스를 적극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을 더 권하고 싶다.
관광객들은 다른 문명, 다른 종교문화에 끌리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금산사 같이 아름다운 곳이라면 말 할 필요가 없다. 아쉬운 것은 금산사 내 각 건축물의 의미를 안내 받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미륵전이 대웅전보다 더 크고 웅장했는데, 궁금증을 풀 수가 없었다. 안내원이 없는데다 영문 팸플릿이 하나도 없었다. 사찰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월드컵 기간 때만이라도 시 차원에서 관광 안내원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충실한 영문 안내서를 만드는 것도 시급해보였다.
전주 특산물 합죽선의 형상과가야금의 현을 본 따 만든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축구 경기를 즐기는 시간은 두시간 남짓이다. 그 나머지 시간은 이제 전주의 몫일 것이다.
■ 패스트 푸드 '전주비빔밥'
전주의 명물인 전주비빔밥이 ‘패스트 푸드’로 변신, 세계화를 겨냥하고 있다.
구입과 운반이 편리해진 패스트푸드 전주비빔밥은 전주시가 1998년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 의뢰해 개발, 1999년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시판되고 있다.
휴대용 용기에 나물류, 고추장 등 별도의 재료가 세트화 해 1주일정도 보관이 가능하며, 밥만 1분 정도 데워서 먹으면 된다. 지난해 새마을호 기차, 편의점 등에 납품된 것을 비롯해 일본, 미국, 싱가폴 시장에도 첫 선을 보였다.
전주시는 월드컵을 맞는 올해를 전주비빔밥의 본격적 세계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나물류의 전통 비비밥에 해물과 김치를 사용한 ‘해물 비빔밥’, 불고기를 넘은 ‘불고기 비빔밥’, 채식주의자를 위해 고기를 뺀 ‘베지테리언’, 고추장을 뺀 ‘유아용’ 등 15가지로 품목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일본, 싱가폴, 홍콩, 미국 등으로의 수출도 계속하면서 국제 프랜차이즈화 계획도 추진중이다. 일본 유통회사인 다이에사에 2만식을 수출키로 했고, 일본 도요다 통상 등과도 수출을 협의중이다.
성과가 좋을 경우 해외에 생산공장을 설립할 계획도 갖추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비빔밥의 우수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며 “월드컵을 계기로 전주비빔밥이 더욱 국제적 명성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폴란드인 이렇게 달라요
한 문화권에서 예의바른 행동이 다른 곳에서는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한국인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술 마실 때 얼굴을 돌려 마셨다.
우리 부모님들은 나중에 “그애는 날 싫어하니. 왜 똑바로 안 마셔. 숨길게 있나”라며 물어보셨다.
한국에서는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실 때 존경의 표시로 얼굴을 옆으로 돌리지만 폴란인에겐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있다.
폴란드에도 높임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연장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다. 서로 친하게 되면 낮춤말을 쓴다.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이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상대방과 친해지자 자연스럽게 낮춤말이 나왔지만 상대방은 이를 무례한 행동으로 이해한 것이다.
음식 문화에도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처럼 폴란드인도 고기를 좋아하지만 폴란드인 젊은이 중에는 채식주의자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에 유학 온 폴란드 친구 7명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5명이 채식주의자였다.이들은 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전혀 먹지 않는다.
비빔밥이나 찌게 등 한국요리 중 고기가 살짝 들어간 음식이 많은데, 사전에 채식주의자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한국에서 즐겨 먹는 생선회를 폴란드인 대부분은 싫어할 것이다. 징그럽다며 질겁할 것 같다.
다른 서구 국가도 비슷하겠지만 폴란드에도 ‘레이디 퍼스트’ 문화가 여전히 확실하다. 승강기를 탈 때나 문에 들어갈 때 한국에서 남녀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폴란드에서는 회사내 사장과 종업원 사이에서도 여자가 우선이다. 남자들을 또 모르는 여성을 만났을 때도 인사의 표시로 손에 키스를 한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비치질 모르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지키는 예의라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필자 약력
안나 이자벨라 파라돕스카=197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바르샤바대 한국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96년부터 서울대 언어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했다.지난달 동구권 출신으로 처음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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