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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미국은 평화애호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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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미국은 평화애호국인가

입력
200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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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주의가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던 1960년대에 미디어이론가 마셜 맥루한은 ‘지구촌’이라는 말로 다가올 세계의 성격을 요약했다.사회주의 체제가 역사의 뒤꼍으로 퇴각한 1990년대 이후 훨씬 좁아진 세계는 ‘지구제국’이라는 더 멋진 은유를 얻었다.

그 때 이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는 말할 나위 없이 미국이다. 제국의 운명을 빚어내는 온갖 결정들이 그 곳에서 내려진다. 이 은유에 따르면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세계의 최고 지도자다.

지금, 워싱턴에 거처를 둔 그 최고 지도자는 너무 미국적이다. 그는 자신이 단지 미국 대통령인 것만이 아니라 이 행성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는 메트로폴리스의 독단적 가치와 이해관계를 제국의 주변부에 거칠게 강요한다. 개인주의는 흔히 미국을 떠받치는 이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찍이 사르트르가 지적했듯, 미국의 개인주의는 획일주의와 대립하기는 커녕 그것을 전제로 삼는 것 같다. 그 개인주의는 다양성이 거세된 개인주의다.

조지 W 부시 정권 이후, 미국은 그 나라에 호의를 지녔던 전통적 자유주의자들까지 실망시키고 있다.

미국은 평화 애호 국가인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전쟁이 드물기도 했지만, 특히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은 노골적인 전쟁국가가 되었다.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는 전쟁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인권국가인가? 아니다. 9ㆍ11 테러참사 직후 이슬람계 시민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불법 체포ㆍ구금은 하나의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미국은 애국주의에 떠밀린 ‘배제의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에 수용된 아프간 포로들은 짐승 취급을 받고 있고, 미국내 시민들도 이른바 ‘애국자법’이라는 족쇄에 묶여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겪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테러리스트’ 사냥은 1950년대 매카시즘 시절의 ‘빨갱이’ 사냥과 달리 미국내의 저항도 거의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어쩌면 그럴 지 모른다. 그러나 선거에 실질적으로 패배한 대통령이 전쟁을 지렛대로 삼아 인기를 천정부지로 올리고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는 다소 엽기적인 데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특히 올해 연두교서 발표 이후 미국에 기대어 사적 이득을 챙기려는 국내의 일부 정치가들과 언론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 전쟁의 임계 상태로 질주하고 있다.

기괴한 것은, 이들이 숭미(崇美)를 ‘애국’의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애국자들’은 미국의 등에 업혀 자국 정부와 반전 세력에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물론, 제국의 질서 속에서 중심에 대한 주변의 굴신(屈身)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기자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굴신에서 나폴레옹3세에 대한 카부르의 굴신을 떠올린다.

피에몬테의 총리 카부르는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허영심 많은 이웃 강대국의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김 대통령은 여러 점에서 자신의 무능을 충분히 입증했지만, 최소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에는 기여한 바가 있다.

서울대 백낙청 교수가 한 대담에서 지적했듯, 9ㆍ11 사태 이후 한반도가 이 정도의 경제ㆍ군사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남북한간에 6ㆍ15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자칭 ‘애국자들’의 숭미에서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 감수성, 곧 역사적 감수성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

이들의 미국 숭배와 북한 때리기는 한반도 평화의 피륙을 찢어버릴 기세다. 지금은 워싱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냥 북한에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백 교수는 대담에서, 지금은 반북 이데올로기가 남쪽까지 해치는 반남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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