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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써클 - "이 땅은 여자에게 큰 감옥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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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써클 - "이 땅은 여자에게 큰 감옥일뿐…"

입력
200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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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미건조하면서도 냉정한 카메라는 집요하게 이질문의 답을 추적해 나간다.처연하기까지 하다. 추적이 끝나면 질문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럼 이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한 여성이 자신의 어린 두 딸을 죽이고 자살했다. 신문에는 그 여자의 죄나 자살에 대한 이유가나와 있지 않았다.” 이란 영화의 새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밝힌 영화 ‘써클’ 제작의 단초다.

‘써클’은 극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다만 이야기 구성이 극적 구조를 띠었을 뿐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됐던 ‘올리브나무 사이로’ 등 이란 영화에서 보았던 어린이의 순수함이나 휴머니즘은 없다. 사회와 남자들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여성들의 눈망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영화는 병원에서 시작해 교도소에서 끝난다. 출산부의 산고 절규는 이내 출산의 기쁨이 아니라 절망으로 변한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로. 절망의 이유는 탈옥한 여자들의 모습에서 이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향으로 가면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며 고향행을 고집하는 나르게스(나르게스 머미자데)에게 여비를 주기위해 처음 본 남자에게 몸을 팔며 “천국이 없다는 걸 차마 볼 수 없어…”라는 말을 남기고 뒷골목으로 사라지는 친구 아레주(마리암팔빈 알바니)에게 카메라가 머문다.

그러나 나르게스의 고향행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터미널에서 “남자가 동행하거나 학생증이 있어야 표를 팔 수 있다”는 표 판매원과 경찰에 의해 고향 행은 무참히 좌절된다.

카메라는 자리를 옮겨 이들보다 먼저 탈옥한 파리(페레슈테 사드르 오라파이)를 응시한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탈옥했지만, 아빠 없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집에서도 쫓겨난 파리.

병원을 찾지만 친정 아버지와 남편 동의없이는 아이를 지울 수 없는 법 때문에 길거리를 방황하고 여관을 찾지만, “남자 없이는 출입할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서 이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다. 가정과 사회 역시 큰 감옥일 뿐 교도소와 차이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특별한 효과나 음악이 없다. 인물들을 드러내는 불안한 화면과 대사가 있을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속도감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참기 어려울 만큼 느리다. 그래서 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삶의 진정성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0년 57회 베니스영화제가 이 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안긴 이유도 이때문이 아닐까. 15일 개봉.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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