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5일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최대 30%의 고율 관세를 부과키로 하자 유럽연합(EU)과 일본, 러시아, 브라질 등 대미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조지W 부시 정부 출범 이후 군사문제나 환경, 국제사법 현안에서 독자 노선을 고집해 온 미국은 ‘신 보호주의’ 무역 정책 강화로 이제 경제에서까지 일방 외교주의라는 비판을 전세계로부터 면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미국의 조치에 따라 주요 철강 수출국 역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강화할 것으로 보여 세계 경제 전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 EU
대미 최대 철강 수출 지역인 EU의 파스칼 라미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성명을 발표, “EU는 이번 조치를 명백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으로 보고 즉각 제소할 것이며 시장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채택은 세계 무역체제의 큰 후퇴”라며 “수입 때문에 미국의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니며 이번 결정은 해결책이 아니라 상황을 악화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라미 집행위원은 “WTO 규정을 준수해 시장보호조치를 취할 것이며 신속 대응을 위해 임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밝혀 대미 무역 장벽 강화 조치를 예고했다.
◇ 일본
일본도 WTO 제소를 검토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은 6일 “사실상 수입을 배제하는 조치를 결정한 것은 극히 유감”이라고 비난한 뒤 “유럽,한국 등과 연대해 WTO 제소를 포함한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히라누마 장관은 “세이프가드(수입제한조치) 발동을 정당화 할 만큼 미국 철강업계가 중대한 손해를 입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998년 702만 톤이던 일본의 대미 철강 수출이 2001년 220만 톤으로 줄어드는 등 미국의 철강 수입량이 이미 전체적으로 감소 추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철강업계는 대미 수출로가 막힌 나라들이 국제시장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여 이미 공급과잉으로 하락세인 철강제품 가격이 더욱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러시아
러시아는 5일 미국산 가금류 수입중단을 경고하며 철강 수입 규제에 대한 맞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농업부는 이날 “레닌그라드에서 미국산 닭고기 표본을 검사한 결과 살모넬라균 양성 반응을 보였다”며 “미국 축산농가 등 에서의 항생제 사용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다면 10일부터 미국산 가금류 수입을 완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주 미국 가금류에 대한 신규 수입면허 발급을 중단한 상태다. 미국은 이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관계가 중대 위기에 처할 수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브라질ㆍ호주
지난 해 7억 2,000만 달러의 대미 철강 수출을 기록한 브라질도 자국 산업의 손실을 우려하며 대응 방침을 밝혔다.
호세 알프레도 그라카 리마 브라질 수석 무역협상 대표는 “우리는 미국의 무차별적이고 부당한 희생자가 돼 왔다”며 “이번 관세 부과로 브라질 업체들은 연간 5억 달러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지오 아마랄무역부 장관은 미국의 규제에따른 피해 규모를 조사한 뒤 WTO 제소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역시 WTO 제소를 검토 중이다. 특히 이안 맥팔레인 산업부 장관은 “미국의 규제 때문에 호주 시장에 덤핑 수출을 시도한다면 중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자국의 철강 수입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방침을 시사했다.
뉴질랜드도 미 조치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며 대응에나섰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미국내서도 비판 목소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5일 철강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최고 30%까지의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자 철강업계와 노조는 환영하고 나선 반면 철강 수요업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US스틸의 존 마조니 노조위원장은 “우리가 당초 요구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만족할 만한 조치”라며 반겼다. 마조니 위원장은 “철강업계는 지난4년 동안 27개 업체 파산과 종업원 4만 4,000명의 해고 등으로 큰 고통을 겪어왔다”고 말하고 “이번 조치로 1~2%대에 지나지 않던 관세율이 대폭 높아지면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동차, 중장비, 캔 등 철강 수요업계는 이번 조치가 철강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수요업계에 떠넘기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미 철강수요산업연합회(CITAC)의 존 젠슨 회장은 “철강업계의 문제는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과다한 보호를 받아온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현재 미 철강수요의 25%가 수입철강인데 수입관세가 부과되면 그렇지 않아도 완제품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있는 우리 업계는 치명타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젠슨 회장은 “노동자 수로 비교해도 철강수요업체 종사자는 1,280만 명으로 철강업계의 17만 명에 비해 50배가 넘는다”고 말하고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타격으로 우리 업계는 7만 4,5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자유무역을 부르짖었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이번 조치는 정치 논리에 자유시장논리가 희생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반박했다.
또한 대부분의 언론들도 부시 대통령이 경제논리를 저버린 채 정치적 도박을 단행했다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6일 “부시 대통령의 조치는 경제회복에 타격을 가하지 않으면서 철강업계를 도와주려는 고육지책이지만 범세계적 반발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번 조치가 일보후퇴, 이보전진을 초래할지,혹은 그 반대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는 국제기업연구소(IIE)의 지적을 인용한 뒤 “철강업계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철강을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등의 가격이 상승해 철강 수요업계가 곤경에 처하고 소비자도 결국 이 부담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버트 크랜달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2004년 재선가도와 이번 중간선거에서 접전이 예상되는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 버지니아 등의 철강 주산지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그러나 자칫하면 회복 국면으로 들어선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의회에서도 철강업체가 가동 중인 지역 출신 의원들은 지지입장을 표명하고나선 반면 자동차업체 등 철강 수요업계가 밀집한 지역의 의원들은 적절치 못한 조치라고 비난하는 등 입장이 엇갈렸다.
리처드 게파트 미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앞으로의 상황은 매우 불투명하다”고 전제하고 “부시 대통령이 더 이상 과다한 조치를 취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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