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문명의 발상지이면서 바깥으로는 여전히 두터운 베일을 드리운 인도. 그래서 인도여행은 ‘신비로의 여행’으로 불린다.아직 우리에게 낯선 인도의 북서부 라자스탄 지역은 더욱 그렇다.
무굴제국 등 수 천년에 걸쳐 이루어진 고대 제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타르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건장하게 버티고 있고, 그속에서 제국의 후손들이 소박하게 살고 있다.
사막과 맞닿은 라자스탄의 작은 도시 나가우르에 다녀왔다.
조드푸르를 출발한지 3시간째, 버스는 계속 황량한 벌판을 가로 질렀다.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란 끝없는 지평선 아래 듬성듬성 자란 메마른 덤불 뿐이다.
인도의 거대한 타르 사막의 입구 나가우르시의 좁은 길은 소와 낙타가 끄는 수레와 버스, 오토릭샤(오토바이 택시) 등이 얽혀 혼잡을 이루고 있다.
길가 여인들의 전통 옷차림은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화려하다. 아마도 사막에 작렬하는 태양빛이 더욱 눈부신 원색을 뿜게하는 것 같다.
나가우르 메인 바자르(Main Bazzarㆍ중앙 시장)의 북적거림을 뒤로 하고 나가우르 성을 들어서니 딴 세상이다.
일절 소음이 단절된 채 비둘기 서너 마리가 환영인사를 한다. 발길에 풀석이는 먼지를 헤치고 두번째 문으로 들어서니 노을빛 성벽아래 흰 텐트 수십여채가 정렬해 있다.
인도의 군주가 사냥할 때 썼던 천막을 응용한 로얄 텐트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하룻밤을 선사한다.
텐트 밖 테라스와 함께 내부엔 싱글침대 2개와 간이 책상은 물론 샤워기와 수세식 변기가 마련된 욕실까지 갖추고 있어 전혀 불편함을 느낄수 없다.
샤워기와 변기로 어떻게 물이 공급될까 궁금해 텐트 뒤로 돌아가니 물양동이 두개가 높이 매달려있다.
일꾼들이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나르고 있는 것. 양심상 물을 물쓰듯 할 수 없어 샤워는 참기로 했다. 이곳은 사막이 아닌가.
사막위에 우뚝 솟은 나가우르 성은 다양한 인도 역사의 축소판이다. 12세기에 세워진 현재의 성벽 안에 모스크와 16ㆍ17세기의 화려한 궁전이 어우러져 있다.
왕비의 궁전(Queen’s Palace)에선 맹렬한 사막의 열기를 식히는 ‘고대 에어컨’을 만날 수 있다.
윈드캐처를 통해 바람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윈드쿨링 시스템과 옥상에서부터 실내로 물을 흘려 내리는 워터쿨링 시스템 등 당시의 인도 건축기술이 신기할 따름이다.
또 무도회장과 거울의 방, 수영장 등을 갖춘 다른 궁전을 둘러보면 또 한번 그 아름다움이 전율로 다가온다. 벽화 속의 관능적인 여인들은 금새라도 벽을 깨고 나와 화려한 춤을 출 것만 같다.
성밖으로 나와 오토릭샤를 불러 1년에 한번 열린다는 나가우르 가축 축제(CattleFair) 장소로 향했다.
시 외곽의 시장엔 수백, 수천마리의 낙타와 소들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워 장관을 이룬다. 조드푸르는 물론 멀리 펀잡지역의 상인들까지 몰려든다는 이 가축시장은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가축시장 한 켠엔 안장, 채찍, 낙타 방울 등 가축용품이나 전통의 상인 사리 등생활용품 시장이 펼쳐진다.
또 고추가 대량으로 거래되고 아이들 장난감 가게에 사탕수수 즙이나 땅콩 등 각종 간식 노점상까지 등장해 마치 우리의옛 장터를 연상시킨다.
낙타와 소들의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땅은 온통 배설물 천지다. 일일이 피하려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결국 나중엔 귀찮아져서 ‘결국 마르면 흙 되겠지’란 생각에 ‘신선한’ 것 만 조심하고 성큼성큼 내딛게 된다.
인도인들 만큼이나 순박한 소와 낙타를 쓰다듬거나 노점들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흥정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막은 언제 햇볕이 내리?U느냐는 듯 금새 쌀쌀해진다. 테라스의 의자를 눕혀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막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북극성을 찾아보니 서울보다 한참 아래에 내려와 있다.
침대를 덮혀주는 물주머니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잠을 청해 본다. 모래먼지 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뿐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막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나가우르(인도)=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볼만한 곳 / 메헤란가르 성, 우마이드 바반 궁전
나가우르 성을 포함해 인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성과 궁전이 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인도엔 500여 명이 넘는 마하라자(Maharaja)라 불리는 군주들이 있었는데 보통 4~6개 씩의 궁전ㆍ별장을 소유했다.
대부분의 성과 궁전들은 현재 박물관이나 호텔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유는 건물 관리 보수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은 그동안 숨겨졌던 인도 왕의 사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됐다.
▽메헤란가르 성(Meherangarh fort)
조드푸르시의 중앙 바위산에 우뚝 선채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저녁 노을이 질무렵 멀리서 바라본 성은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또 성벽에서 내려다 본 파란색 일색인 구 시가지 풍경이 환상적이다. 성안에 있는 박물관에는 왕들이타던 코끼리가마, 각종 무기, 그림들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우마이드 바반 궁전(Umaid Bhawan Palace)
메헤란가르 성 반대편에 1943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궁전으로 손꼽힌다.
은은한 핑크 빛의 사암으로 지어진 이 곳은 1977년부터 호텔로 개방, 손님을 맞고 있다.
전세계 유명 인사들이 머물렀던이 호텔 지하엔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수영장이 있어 유명세를 더한다. 현재 조드푸르의 왕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 왕의 사냥터였던 사다 사만드 호숫가에 세워진 사다 사만드 궁전과 12세기에 건설된 발사만드 댐의 발사만드 레이크 궁전도 한적한 휴양을 즐기기엔 좋은 휴식처다.
각종 철새가 서식하는 사다 사만드 호숫가에선 화려한 플라밍고의 군무(群舞)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나가우르 성주 가즈 싱
세월의 풍파로 일부분이 파손된 나가우르 성은 최근 복원공사로 옛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 성의 소유주인 조드푸르의 왕, 마하라자 가즈 싱(54)이 미국의 폴 게티(PaulGetty)재단과 함께 수천만 달러를 들여 2000년부터 진행해온 복원사업을 통해서다.
인도 독립으로 왕권이 폐지된 후 다른 마하라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는 달리가즈 싱은 이러한 문화 복원 사업을 통해 ‘명목적인 왕’으로서의 역할을 찾고있다.
조드푸르는 싱 왕가가 700여년을 다스려온 서인도의 가장 큰 왕국이다. 지금은 비록 왕권이 거세됐지만 마하라자는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고, 또한 왕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
“조드푸르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나름의 역할을 찾고 있다”는 마하라자는 유적 복원, 박물관 건립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즈 싱은 부친이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1952년 당시 4살에 조드푸르의 왕으로 추대됐다.
“이전까지는 여자들한테서만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날 내 주위엔 온통 남자들 밖에 없었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돼 있어 긴장됐다”고 마하라자는 당시의 추대식을 떠올렸다.
마하라자는 지난해 2월 서울에서 직접 조드푸르 회화전과 음식전시회를 열어 한국과의 인연을 맺고있다.
조드푸르(인도)=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인도 여행팁
인도 여행길에 설사약 등 상비약은 필수품. 수돗물이 나쁘니 호텔에서 생수를 사서마시는 것이 좋다. 인도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등 온갖 종교가 어우러진 나라다. 국민의 80%가 힌두교를 믿고, 이슬람교를믿는 14%의 인구는 인도와 적대적인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 보다 많다.
힌두나 이슬람 등 대부분의 사원은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고, 일부 사원에선짧은 치마나 반바지 차림은 출입이 통제된다.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도 중 채식주의자가 많지만 생선이나 다른 고기를 먹는 사람도 꽤 있다. 이슬람교도는돼지고기를 피한다.
인도의 음식은 독특한 향신료 때문에 처음엔 거북하지만 한번 맛들이면 매콤한 게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공용어로 힌두어를 쓰는데관광지에선 영어가 통한다. 통화는 루피로 1루피에 28원 정도다. 인도의 뉴델리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주2회씩 직항 운항한다.
뉴델리에서조드푸르로 가는 항공편은 약 2시간 걸린다. 또 조드푸르나 나가우르까지는 철도편을 이용할 수 있다. 조드푸르 지역의 옛 성에서 묵는 관광상품은TCI코리아(02-733-1872)나 웰컴헤리티지(www.welcomheritage.com)를 통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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