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바람이 인다. 댓잎이 흔들리고, 어깨를 맞대고 있던 대나무들이 이쪽 저쪽으로 휩쓸리며 푸른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한다….서정국(44)씨의 17회 개인전 ‘대나무 숲에서’는 맑고 서늘하다. 그 속에 바다를 품었다 해서 이름이 붙은 남쪽 땅 해장죽(海藏竹) 대밭에 이는 바람 소리를, 도심 한가운데로 옮겨다 줄 것 같다.
그의 대나무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대나무다. 금속 철봉을 용접해 마디 많은 대나무의 형상을 만들었다.
댓잎은 없다. 직립한 대나무 줄기들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그러나 거기서 바람이 분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대나무를 살짝 건드리면 미세한 음의 파동이 전시장 전체로 서서히 퍼져 나간다. 차가워만 보이던 금속 소재가 자연의 숨결을 뿜어내는 것이다.
“작업하면서 끊임없이 고향 마을 뒤편의 대나무밭을 떠올렸습니다.” 작가는 80년대까지는 실제 대나무를 사용해 창작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 금속을 쓰기 시작했다.
철봉으로 만든 검고 굵은 대나무, 철사를 이은 가늘디 가는 갈대도 있다. 가장 비자연적으로 보이는 소재로 그는 고향의 대밭, 자연을 되살려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식물적 상상력이다. 전시회에는 대나무 작품 외에도 서로 엉크러진 식물의 뿌리를 연상시키는 ‘생명의 줄기’ 시리즈도 나왔다.
서씨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를 거쳐 현재 계원조형예술대교수로 재직 중이다. 15일까지 박여숙화랑. (02)549_7574~6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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