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신화 비결은 자기희생 농구"‘겨울이 깊어지면 봄은 멀지 않았다’는한 시인의 싯구를 요즘 가장 절실히 느끼는 이는 누굴까.
지난 시즌 최하위였던 팀을 당당히 올시즌 정규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김 진(41) 감독. 김 감독에게 올 봄빛은 유난히 화사하다.
10연승중이던 전주 KCC를 연장끝에 누르고 동양이 정규리그 정상에 등극했던 지난 3일, 김 감독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갔다. 코치시절인 98~99시즌 당한 전무후무한 32연패(連敗), 감독 대행의 꼬리표를 뗀 지난 시즌 역시 최하위….
우승 순간 떠오른 얼굴은 누구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감독은 “가족이나 선수들보다 어려운 시기에 팀을 이끌다 물러났던 두 명의 전임 감독(박광호 최명룡)들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 시즌전 동양의 정규리그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팀의 주력인 김병철 전희철 박재일이 군복무로 빠졌던 98~99시즌의 부진은 어쩔 수 없었다지만 김병철 전희철이 복귀한 지난 시즌에도 팀은 꼴찌였다.
지난해 여름에 뽑은 용병 마르커스 힉스와 라이언 페리맨 2명은 키가 2m도 안돼 상대 용병들을 압도하는 ‘빅맨’과는 거리가 멀었고, 팀의 약점인 포인트가드로 점찍은 선수는 대학을 갓 졸업한 김승현이었다. 재주는 있다지만 키도 작고 슛도 불안하다는 회의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불과 1년 사이에팀을 환골탈태시킨 김 감독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김 감독은 철저한 희생의 농구를 강조했다. 김병철 전희철의 시너지 효과만들기가 첫 번째 작업이었다. 지난 시즌 종료후 ‘스타 의식에 젖은 둘이 서로 패스도 안한다. 한 사람은 트레이드 시켜야 한다’ 는 팬들의 비난이 잇달았지만, 김 감독은 두 선수들을 한번더 믿기로 했다. 대신 두 선수에게 “ 너희들이 50점을 넣어도 100점을 넣어도 경기에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철저한 희생을 강요했다. 전희철이 몸 싸움을 피하며 파고들지 않거나 김병철이 느슨한 수비를 하면 연습경기에서라도 가차없이 벤치에 앉혔다.
“시즌초 슛감이 좋더라도 수비가 맘에 안들면 병철이를 바로 빼버렸어요. 병철이 팬들의 항의 메일도 많이 받았었죠. 하지만 ‘팀이 이기기 위해선 내가 뭘 해야하나’ 선수 스스로 깨닫게 하려 했지요.” 그 때문인지 올시즌 전희철이 포스트로 수비를 끌고 들어가면 김병철의 외곽슛으로 득점을 하는 동양의 득점루트에 다른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했다.
김 감독은 팀의 하모니가 깨지는 것을 용병 한 두명의 부상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믿고있다. 후보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한 것은 물론이다. 김 감독은 주전들에게 “농구는 5명이 하지만 농구팀은 절대 5명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벤치에 있는 선수들 때문에 너희들이 코트에서 뛸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양이 올시즌 승리수당을 주전 후보 가리지 않고 일괄 지급한 것도 김 감독이 구단에 강력히 요청했기때문이었다.
지난 여름 가장 힘든코스를 골라 한라산을 등반시킨 일,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비연습을 훈련의 3분의 2로 할애한 일,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훈련은 처음이다”는 김승현의 투정에 귀를 막고 더 강도높은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시킨 일 등 김 감독은 연습장과 코트에서는 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허물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배 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시즌 중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식스맨 박훈근이 트레이드를 요구했을 때 김 감독은 이틀동안 박훈근을 붙들고 “나도 연봉 1억이 넘는 선수를 놀리기는 싫다. 네가 바라면 트레이드 시켜주겠다. 하지만 아무 팀에나 보내기는 싫다.올시즌 우리 팀에서 열심히 해 네 상품가치를 높여라”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김 감독의 충고에 박훈근은 마음을 비웠고 팀이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감독이 꽃피운‘자기 희생의 농구’는 벤치와 선수들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지만 지도자와 선수 어느 것이 힘드냐는 물음에는 주저없이 “지도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신뢰를 얻은 일은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내둘렀다.
“병철이는 칭찬해주면 어린애처럼 금방 잘하고, 승현이는 아직 배워야할 게 많아 칭찬보다는 지적하는 일이 더 많고, (위)성우는 마음이 약해 크게 꾸짖으면 안되고…”라며 시즌내내 자신을 잘 따라와준 선수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는 김 감독은 이제 명실상부한 첫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노력한 이상의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한다는 김 감독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나오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노력한 만큼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젠 어느 팀과 만나도 자신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면 우승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지를 내비친다.
“지난해에는 기자분들이 우리 팀엔 기사 거리가 없다고 투정하셨는데 성적을 못내서 기사 거리를 못 주는 당시 제 기분은 어땠겠습니까”라며 털털 웃는 김 감독은 인터뷰 도중에도 끊임없이 울리는 축하전화를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현역시절 ‘코트의 신사’에서 어느덧 명장의 자리로 올라선 김 감독의 화려한 성공시대는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 프로필
▲ 생년월일 1961년 1월22일 강원 춘천생
▲신체조건 185㎝ 78㎏
▲학력 원주중앙초_신일중_신일고_고려대
▲경력 삼성전자선수(84~95) 국가대표(89, 90) 상무 감독(1995) 동양 코치(96) 동양 감독대행(2000.2) 동양 감독(2001.5~현재)
▲가족관계 부인 사성빈(35)씨와 1남1녀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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