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동 경관 증언 "말하지 말라 협박·도청당해"1975년 경기 포천군 약사봉을 등반하던 중 실족사한 것으로 발표됐던 재야 지도자 장준하(張俊河) 선생 의문사와 관련, 당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처음 출동했던 경찰이 협박을 받고 도청까지 당한 사실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5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규명위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깊이 개입하고 사건 현장을 조작했을 가능성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있다.
규명위 관계자는 5일 “당시 담당 경찰이었던이모(56ㆍ현 전남 모 파출소 소장)씨를 3차례 소환 조사한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며“협박했던 사람들과 녹음기를 부착했던 사람들이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었을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규명에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온 이씨는 그동안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다가 이번에 규명위에 의해 처음으로 진술이 이뤄졌다.
이씨는 이날 본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단순한 변사 사건으로 알고 현장에 갔다가 따로 출동한 군 위생병 3명과 함께 변사자가 장준하 선생임을 확인했다”며“조사를 위해 곧바로 파출소로 내려가는 도중 계곡에서 나타난 건장한 남자 3명이 ‘본것 외에 다른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추모제 때 함께 자리했던 백기완(白基玩ㆍ통일문제연구소 소장)씨가 내 몸에 녹음기가 있다고 하길래 놀라서 떼어냈다”고증언했다. 이씨는 당시 추모제에 중정 직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규명위는 사건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발생 3~4시간 후에 현장에서 이씨를 협박하고 이씨를 감시하기 위해 녹음기를 부착한 행위 등이 정보기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중정의 직ㆍ간접 개입 여부를 확인 중이다.
한편 지난해 12월까지 규명위 상임위원을 지냈던 김형태(金炯泰) 변호사는 “90년대 초 원로 법의학자가 장준하 선생 시신의 외상은 뾰족한 망치로 맞은 듯한 왼쪽 귀밑 상처 뿐으로 실족사로 보기에는 무리가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규명위는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에 당시 내사자료와 포천 지역을 담당했던 직원 명단을요구했으나, 국정원은 특별한 이유없이 자료제공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3년 사상계를 창간, 편집장을 지낸 장준하 선생은 5ㆍ16후 박정희(朴正熙)정권에 대해 반독재투쟁을 벌이다 수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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