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양아치가 걸어오는 듯했다.소매없는 셔츠와 까만 가죽바지에 느릿느릿 걷는 장 혁(26). 어린 동생의 작은 옷을 억지로 껴입고는 어깨를 꾸부정하게 하고는 두리번거리는 이범수(32).
세상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게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모습”이라고 했다. ‘정글쥬스’(22일 개봉, 감독 조민호)가 어떤 영화일지 안봐도 짐작이 간다.
정글쥬스. 여러 종류의 약을 섞어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는 환각제, 또는 강렬한 맛의 칵테일이다.
영화제목처럼 농담과 욕설, 무거움과 가벼움, 심각함과 어이없음, 웃음과 폭력을 천방지축 혼합해 뒷골목 청춘의 초상과 꼬이기만 하는 인생을 그렸다.
동네(서울 청량리) 친구인 기태(장혁)와 철수(범수)에게 굴러 들어온 마약한 봉지. “에라 모르겠다. 갖고 튀자.”
‘정글쥬스’는 그들이 마약 주인인 조직폭력배에게 쫓기면서, 마약을 처분하기 위해 겪는 해프닝과 캐릭터의 충돌을 유쾌한 해피엔딩으로 이끌어간다.
이런 버디무비(2인조 영화)에 둘이 어울릴까.
영화 ‘화산고’에서 장 혁이 보여준 그 우직하고 코믹한 캐릭터와 ‘신장개업’ ‘하면 된다’에서 이범수의 능청과 재치를 떠올리면 꽤나 재미있을 법도 하다.
처음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둘은 나이차도 잊고 친구가 됐다.
촬영이 끝난 지 벌써 석달이 지났고, 장 혁은 드라마 SBS ‘대망’ ‘명랑소녀 성공기’로 이미 다른 사람이 됐지만 만나면 ‘정글쥬스’(감독 조민호) 이야기로 수다스럽다.
착한 양아치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범수= 아직도 너 만나서 이야기하면 영화찍는 느낌이야.
장 혁= 형이 그만큼 영화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말이겠지. 아직도 난 기태와 철수가 좋아.
단순 무식하면서 천재라고 생각하며 늘오버하는 기태에게는 꿈이 있고, 겁 많고 어리버리한 철수에게는 순수가 있잖아.
어둡지 않고 밝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정글쥬스’를 보고 ‘저런 놈들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하며 인생을 낙천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이범수= 내일 시험인데 공부도 안하고, 느리고 게으르고. 그렇다고 그 학생이 나쁜 놈은 아니잖아.
보기에 한심하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적당히 무시당하고 기죽어가며 소시민으로 잘 살아보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치는 건데.
감독이 우리에게 코미디를 못하게 한 것도 바로 런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닐까.
장 혁= 전부터 형과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 ‘은행나무 침대’의 단역에서부터 ‘하면된다’까지 형이 나오는 영화는 다보면서 ‘웃기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저사람 삶이 저러겠구나. 철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으니까 형과 잘 맞겠구나’ 생각했어.
이범수= 나 역시드라마 ‘왕룽의 대지’(SBS)에서 너의 순박함을 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것을 연기 호흡에 반영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 무식해 보일 만큼 열정도 있고..
장 혁= 중학교 때턱걸이 하나 더해 보겠다고 아파트 14층 난관에 매달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으로 해본적이 있어. 어릴 때부터내가 성에 차지않으면 무슨 방법으로든 했어.
이범수= 실천하는 모습이 우직하고 단순해 보이지, 판단과 접근법은 섬세하고 진지하며 꼼꼼하다는 것을 느꼈어.
그런점에서 나하고 일맥상통. 지금까지 18편의 영화를 하면서 보기에는 모두 비슷한 코미디같지만 캐릭터마다 남들이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것을 한번 비틀어 다르게 시도해 왔어.
장 혁= 나도 형의 연기를 코믹 하나로 묶고 싶지 않아. ‘신장개업’이나 ‘하면된다’에서도 웃기려고만 하는 연기는 아니었어.
캐릭터의 틀 안에서 진지한 모습이었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러고 보니‘정글쥬스’가 형의첫 주연 작품이잖아. 소감은?
이범수= 단역 때와 차이가 없어. 떨리는 마음이 길어졌다는 것 뿐.
둘의 대화는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이범수는 “사람의 관계와 느낌대로 영화가 나온다”고 했고, 장혁은 “아직 하나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기보다는 지금 이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그것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런장 혁을 이범수는 매장량이 무궁무진한 유전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둘은 “더도 말고 2년 후에영화에서 양아치 말고 핸섬한 모습으로 극적으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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