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하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 불법정치자금 지원거부 선언과 함께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한 ‘이중 포석’으로 해석된다.요약하자면 불법 정치자금 지원 고리를 끊되 구미에 맞는 후보에게는 법 테두리 내에서 적극 지원하는 등 정치활동 참여를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원칙 천명에 불과하지만 재계의 대선 공약 평가는 2000년 4ㆍ13 총선당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격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의 과거 낙선운동이 후보 개개인의 자질을 문제시한 반면 재계는 공약 하나하나가 시장경제 논리에 적합한 것인지 여부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평가 결과는 원칙적으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후보 개개인과 회원사 기업들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대외 공개의 길을 열어뒀다.
이처럼 재계가 강력한 조치를 들고 나온 것은 ‘무분별한 선심 공약 →정치권의자금 부담 →기업 지원 요구 쇄도 →기업 부담 가중’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의도.
불법정치자금 지원 거부가 선거 과정에서의 정경유착 고리를 끊는 개념이라면 이번 선언은 선거 이후의 고리까지 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는 각종 선거 일정과 국제 스포츠 행사 등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너무 커 경제 회복세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결과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향후 노사관계 등 광범위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인 입김을 강화하기 위한 성격도 짙다.
‘주5일 근무제’등 최근 노사관계 현안처리 과정에서 재계의 입장이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있다는 불만이 재계 내부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약 평가 = 후보 평가’로 인식될 수 있어 재계의 이 같은 움직임이 결국 후보들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맞불 놓기’식 정치 참여가 가열되는 등향후 정국에 혼란을 촉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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