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봄호를 읽다가 윤제림씨의 시 ‘연변처녀’를 만났다. 시인의 마음 속에서 연변처녀는 과거의 여자다.한국 여성 모두의 아스라한 과거를 그녀는 자신의 광배(光背)로 삼는다.
시인이 보기에 연변처녀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의 내 어머니,/ 꽃가지 사이로 얼굴만 내놓은 사진 속/ 시집 오기 전의 아내,/ 눈보라 고갯길을넘어 교실로 들어서는/ 정순이, 순옥이 그리고/ 국어책 속의 영희”다.
정순이나 순옥이나 영희라는 이름은 옛날 여자아이들의 이름이다. 작명의 모더니즘에 익숙한 요즘 부모들은 딸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순박하게 짓지 않는다.
그들은 순할 순(順)자나 계집 희(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글자가 들어간 이름들은 겨울 산을 넘어 등교해야 했던 옛시골 아이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세련된 부모들이 딸에게 주고 싶어하는 글자들은 린(隣)이나 원(媛)이나 빈(彬)이나 령(玲) 같은 것들이다.
‘국어책 속의 영희’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1950~60년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속에서 ‘영희’는 한국의 계집아이들을 대표했다.
‘철수’나 ‘영길’이 한국의 사내아이들을 대표했듯이.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연변처녀야,/ 나는 지금 네 얼굴에서/ 내가 알던 모든 처녀를 본다.”
연변처녀가 한국 여성의 잃어버린 과거인 것은 그들의 이름이 요즘 도회지 한국인들의 언어 감각과 어긋나서만이 아니다.
시인은 그들의 낯에서도 잃어버린 토종 한국 여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런 한국적 얼굴이 아주 사라져버릴까 걱정한다. 그는 노골적으로 말한다.
“연변처녀야,/ 아무도 주지 말아라./ 네 뺨 위의 대구 사과/ 혹은 소사 복숭아.”
연변처녀가 뺨 위에 지녔다는 대구 사과나 소사 복숭아는 한국인들의 얼굴 특징이었던 광대뼈와도 관련되겠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수줍음과 관련돼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독한 맛을 아직 보지 못한 연변처녀의 그 수줍음에서 시인은 자신의 상상력 속에 자리잡은 원(原) 한국인의 염치를 발견한다.
이 시를 읽고 있는데, 연기자 허영란씨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 활자 위에 앉았다.
지난해에 MBC베스트극장 ‘내 약혼녀 이야기’에 연변처녀로 출연한 허영란씨는 시인의 낭만주의 속에 자리잡은 바로 그 연변처녀였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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