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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모리스 파퐁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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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모리스 파퐁을 생각하며

입력
200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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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파퐁. 그가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뉴스는 접하지 못했으니 그의 나이 92세일 것이다.파퐁은 프랑스의 최고령 복역수다. 그의 죄과가 드러난 것은 1981년이었다. 그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역사학자의 폭로에 의해서다.

나치 괴뢰 정권인 비시 정권 하에서 보르도 지역 치안 책임자를 지낸 파퐁은 약 1,600명의 유대인을 체포해 가스실로 보냈다.

그는 83년 희생자 유족의 고발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를 재판정에 세우기까지는 14년이 걸렸다.

97년에서야 재판에 회부됐고 징역 10년 형을 받았다. 그는 99년 10월 항소심 하루 전에 스위스로 도주했다가 붙잡혀 와 형이 확정됐다.

전후 파퐁은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이었다. 드골 정권 하에서 파리경찰국장, 지스카르데스탱 정권 때 예산장관까지 지냈다.

“국가가 애국자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고 외치며 가혹한 전후 청산 작업을 벌인 샤를르 드골의 ‘정의의 법정’에서 그는 교묘히 살아 남았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90을 눈앞에 두고 그는 죄과를 치루어야 했다.

침략과 수탈, 독재의 역사를 지닌 대부분의 나라들은 과거 청산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적에게 협력했거나, 반인도적ㆍ반민주적 범죄를 저지른 과거의 인물들에 대해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국제적 압력에 의해서 청산과 단죄는 이뤄져 왔다.

전후 독일의 나치 청산,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백인 정권에 대한 청산, ‘인종청소’의주범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에 대한 국제적 처단, ‘킬링 필드’의 폴포트 정권이나 독재자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세계 현대사는 사실 단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배타주의ㆍ외국동경 혼재

역사의 청산과 관련해 가장 자주 이야기가 되는 것은 프랑스의 경우다. 프랑스도 사실상 ‘마지막 전범’인 파퐁을 처단하는 일에는 고민의 일단이 있었다.

그가 전후 정부에서 고위관료로 승승장구했고, 비시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맞물려있는 점이 부담이었다.

비시 정권 하에서 역시 관리를 지낸 것으로 알려진 미테랑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도 문제였다.

드골 정권의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단은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와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된다.

100만 명의 부역자가 투옥됐고, 6,700여 명에게 사형이, 3만 6,700여 명에게 유기징역이 선고됐다.

불과 4년 여 간의 역사에 대한 가차없는 심판이었다. 36년에 걸친 일제통치 하에 대한 반민특위의 처단은 221건 기소에 징역형이 선고된 사람은 12명이었고,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7명뿐이었다.

그리고 정권이 스스로 처단기구를 테러해 해산시켰다. 드골은 특히 지식인과 언론인에 대한 단죄를 가혹하게 했다.

파리에 입성한 드골은 첫 심판대에 나치 협력 언론인을 세웠다. 드골은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죄를 물었다”고 말했다.

900여 신문잡지사 가운데 649개가 폐간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

우리만의 틀서 벗어나야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공개가 우리 사회에 논란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논란의 핵심은 늦어도 너무나 늦어버린 청산 작업에 대한 민족적 성찰과, 이 어렵고 난감한 문제 앞에서 취해야 할 국민적 합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것 같다.

일부 특정 인물에 대한 분류의 시비, 그리고 정치적인 해석이 본질을 흐리고 있다.

참회의 눈물과 고백의 성사도 보이지 않는다.

넬슨만델라는 흑백 자유총선에서 승리한 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역사를 청산했다.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면을 했다. 단죄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진실 규명만이 과거를 편히 쉬게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기봉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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