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의 ‘고백’으로 드러난 정치인의 후원금 신고누락 사례는 정치권 전체로 보면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신고한 후원금’과 ‘신고하지 않은 비자금’의 이중 구조로 정치자금을 관리ㆍ지출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자금에 관한 위법적 상황이 정치권에서 일상화, 관행화돼있는 셈이다.
스스로 소장 개혁 세력임을 자처하는 민주당 A 의원은 4일 “정치자금으로 쓰라고 갖다 주는 돈을 후원금 영수증 처리를 통해 선관위에 제대로 신고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단언했다.
A 의원은 그 이유에 대해 “남이 모르는 돈이 없으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유력 실세들은 한도액을 훨씬초과하는 정치자금 지출을 감추려는 것이고 정치자금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나중에 지출내역을 선관위에 신고할 때 일일이 영수증을 첨부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의 중진인 B 의원의 측근이 털어 놓는 정치자금 이중관리의 실태는 더욱 적나라하다.
이 측근은 “100만원 이하의 푼돈이나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소액 다수의 돈은 대부분 영수증을 발급하지만 큰 돈은 선별 관리한다”면서“의원들이 먼저 비자금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후원자들이 신분노출을 꺼려서, 또는 ‘편하게’쓰라며 영수증 발급을 오히려 사양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돈은 대가성과 관련해서도 석연치 않은 자금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또 정치인들은 대부분 공식 후원회 행사 때 접수되는 후원금 만을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선관위에 신고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실제로 짭짤한 돈줄은 후원자들과의 개별적인 ‘식사자리’라는 것을 모르는 정치인은 없다고 한다.
후원회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 정치인이 실세임이 인정돼 이후에 식사자리에서 전달되는 자금의 액면이 달라진다는 것도 웃지 못할 사실이다.
이러한 자금이 음성자금의 주종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자금의 위법적 관리에 둔감하기는 중진이나, 초ㆍ재선 의원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민주당 초선인 C 의원의 경우, 선관위에서 공개한 2001년 후원금 액수는 4억원에 못 미치지만 사석에서는 “7억원을 넘게 걷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C 의원은 나아가 “후원금을 많이 걷었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손 벌리는 데가 많고 너무 적게 신고하면 힘없는 의원 소리를 듣는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결국 선관위 신고 액수는 ‘고무줄’이라는것이다.
민주당 중진인 박상천(朴相千) 상임고문은 실명을 밝히며 공개적으로 정치자금과 관련된구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박 고문은 “해마다 내가 후원금 모금 액수에서 수위를 다투는 데 그것은 내가 있는 그대로 신고하기 때문”이라며 “나보다더 잘 나가는 실세들이 많은 데 나는 솔직해서 손해 보는 경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정치권 저변에서 흘러 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신고하지 않은 자금을 친인척이나 측근의 계좌에 위장 분산해서 사용하는 탈법적 기술도 상당히 발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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