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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이리스'- 정열ㆍ사랑ㆍ망각… '내 아내의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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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이리스'- 정열ㆍ사랑ㆍ망각… '내 아내의 生'

입력
2002.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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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문제는 그 ‘누군가’가 쉽게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려 안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야기는 따분하다.‘아이리스(Iris)’는 영국의 대표적 여성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1919~1999)의 남편 존 베일리가 쓴 ‘아이리스를 위한 엘레지(Elegy For Iris)’를 원작으로 한 전기영화이다.

젊은 시절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릿)는 걸음이 재다. 몸 속에서 지성과 정열이 부글부글 끓는 바람에 그는 늘 지상에서 떠 있다.

늘 논쟁적이고, 많은 남자를 만났으며, 머뭇거리는 남자를 성적으로 리드할 줄 아는 그런 여자였다.

아이리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젊은 학자 존 베일리(휴 본빌)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언제나 초조했다.

노년의 아이리스(쥬디 덴치)는 친구 같은 남편 존 베일리(짐 브로드벤트)와 살고있으나, 그녀의 뇌는 병들어 치매를 앓기 시작한다.

영화는 청춘과 노년, 두 시절을 적당한 간격으로 짜넣어 다소 지루할 법한 전기영화 형식에 변화를꾀했다.

24일 예정된 아카데미상에 휴 본빌을 제외한 3명의 배우가 모두 여우주연, 남녀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내면 연기가 세심하다.

‘타이타닉’ 이후 허술한 영화에만 출연해 배우 생활이 일찍 끝날 것 같았던 케이트 윈슬릿의 변신도 꽤 성공적이다.

영국영화로 ‘음모론’을 살짝 끼워넣은 할리우드식 전기영화 ‘뷰티풀 마인드’보다는 재미가 떨어진다.

아이리스의 양성애 경력이나, 문란했던 과거에 대한 존의 질투가 심도있게 그려지지 못한 것은 전기 영화의 뚜렷한 한계.

아이리스가 같은 말을 반복하다 결국 부엌에서 방으로 가는 길까지 잊어 버리는 끔찍한 치매의 진행 과정, 아내를 간호하던 남편조차 치매 초기 단계에 접어드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치열한 진실이다.

평생 친구처럼 지낸 남편을 잊어버리는 아이리스를 지켜보면 치매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떠오른다.

치매란 잊고 싶지않은 사람의 기억마저 잊게 하는 망각 바이러스다. 감독은 리처드 아이어. 8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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