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 3월4일, 흔히 ‘항해왕’으로불리는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태어났다.1460년 몰(歿). 아비스 왕조의 창시자인 주앙1세의 셋째 왕자로 태어난 엔리케는 아버지와 형 두아르테 그리고 조카 아폰수5세 등 세 왕을 섬겼다.
비록 그 자신은 왕위에 오르지 않았으나, 엔리케는 포르투갈의 탐험 항해와 식민을 총지휘해 조국과 자신의 가문을 대항해(大航海)시대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서양사에서 지리상의 발견 시대나 대항해 시대로 불리는 15~17세기는 포르투갈의 아비스 왕조에 의해 그 문이 열렸다.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와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브라질을 발견한 카브랄, 스페인 왕의 도움으로 최초의지구 일주 항해를 지휘한 마젤란에 이르기까지 대항해 시대의 영웅들 가운데는 포르투갈인들이 많다.
그 초석을 놓은 것이 엔리케 왕자다.
포르투갈 남서부에서대서양으로 돌출해 있는 상비센테 곶은 엔리케의 대항해 사업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그 곳을 떠난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고대 그리스 이래 공포의 바다로알려진 아프리카 서해안을 저어가며 서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했다. 상비센테 곶에는 지금도 항해왕 엔리케가 쓰던 연구소와 관측소의 유적이 남아있다.
대항해를 통한 지리상의발견을 부추긴 것은 일차적으로 소금ㆍ황금ㆍ상아ㆍ노예 등의 무역이라는 경제적 동기였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어딘가에 있다는 기독교 왕 프레스터 존의나라에 대한 전설도 탐험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12세기의 독일 주교 오토가 쓴 ‘연대기’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라는 묘사로 처음 등장하는 프레스터존은 동쪽으로 가는 육로를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교도에 맞서 유럽의 기독교도가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종교적 형제로 상상되었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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