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광복회로부터 넘어온 자료를 바탕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708명의 명단을 발표한 것으로 인해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발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자신들의 뿌리가 포함된 언론에서는 강력히 반발하면서 명단 발표의 의의를 부정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애써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떤 근거에서 친일이라고 할 수 없는지를 제시하고,독자들에게 그러한 과오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역사에 대한 그들의 공헌도를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역사의 평가나 시선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에 비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삶에는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따라서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영욕이 함께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사람이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가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예술가로서의 가치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으며,반대로 그가 아무리 훌륭한 종교인이었고 언론인이었다고 해도 그가 친일을 했던 과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이번에 발표된 명단은 바로 친일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선정했을 따름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있다고 했을 때,그것에 대해 진정한 참회를 통해 반성할 수 있는 자세일 것이다.
그 후손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상의 친일 행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었던 그 동안의 안락한 삶과 교육의 기회의 이면에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치러야 했던 큰 희생이 있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친일 청산 작업을 증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참하라고 한다면 후손들에게 너무나 지나친 요구가 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친일에 대한 논의가 또 하나의 연좌제가 되어 역사적으로 큰 기여를 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우리도 만약 식민지 시대에 살았다면 친일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회의원들이 제시한 명단은 그 자체가 결정적인 권위를 지닌 것도,최종적인 것도 아니며,그들이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언론 공방을 통해 해결할 일도 아니다.이제는 또다시 우리 사회에서 잠깐 들끓다가 다시 잊혀져 가도록 할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제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 제정이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또 이미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친일 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조를 통해 공식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 및 후손들에게도 충분한 반론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당연히 이번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의 옥석을 가리는 일 뿐 아니라,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엄밀한 검증도 필요할 것이다.
이번 명단 발표가 철저한 진상 규명을 바탕으로 회개와 반성이 이루어지고,용서와 화해를 통해 과거를 씻어내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주 진 오 (상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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