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정치개혁특위가 20세 이상 장기거주 외국인(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선거법 개정안 조항을 놓고 여야 할 것 없이 ‘위헌’소지를 제기하고 나섰다.먼저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 의원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들어 위헌 주장을 펼쳤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 등도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선거권을 가진다’고돼 있는데 외국인이 국민이냐”며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문까지 들어가며 위헌론에 가세했다.
정개특위 대표 자격으로 출석해 있던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 의원은 크게 당황해 하며 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결국 외국인 참정권 인정조항은 삭제돼 버리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정개특위는 지난해 12월부터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고 법사위에는 심사 이틀 전에야 법안을 넘겨 두 위원회간에 사전조율의 시간조차 없었다.
외국인 참정권보장은 장기 거주 외국인 1만7,000여명의 인권신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라 밖으로는 일본 정부가 재일 동포에게 참정권을 주도록 압박할 수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재일동포 참정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자 지난해 초 ‘장기 거주 외국인 특례법’을 추진한다며 법석을 떤 일도 있다.
그런데 여야 모두 이런 중대한 사안을 입법하면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문제인 위헌여부조차 사전에 검증하지 못하는 엉성함을 보여주고 말았다. 국회가 국민에게 보여주는 실망 시리즈에는 정말 끝이 없다.
박정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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