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에 군사 교두보를 확보한 데 이어 그루지야에까지 최대 200 명까지의 파병을 결정하자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미묘한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옛 소련 해체 이후에도 이 지역에 상당한 발언권을 가졌던 러시아는 ‘대 테러전’이라는 명분에 공감하면서도 미군 파병이 장기 주둔으로 이어져 자국의 영향력이 축소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 국가들은 경제 원조 등을 이유로 내심 미국의 세력 확대를 반기는 분위기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러시아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27일“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제 공조에는 찬성하지만 그루지야에 대한 미국의 군사 파견 가능성은 이미 어려운 이 지역 상황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부분의 러시아 관리들과 의회 지도자들은 미국의 그루지야 개입이 러시아의 영향력 감소에 목적을 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의회 지도자들은 특히 “미국은 먼저 이 지역에 발가락을 담그고 다음에는 발을, 머지 않아 새 점령지대를 만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일부 지도자들이 체첸 반군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군사 개입을 직ㆍ간접으로 반기는 기색이었지만 대세를 이루진 못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미군 파병이 오히려 카프카스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그루지야가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소탕할 수 있도록 주로 장비와 기술적인 조언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파견된 군사고문관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장기 주둔 노골화하는 미국
러시아는 아프간전을 계기로 미국이 아프간과 주변국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파병 미군을 장기 주둔시키려는 움직임에 자극을 받고 있다.
우즈벡의 하나바드, 타지크의 쿨랴브,키르키스의 마나스 공군기지에 주둔한 2,000 명 규모의 미군은 당초 아프간전 수행을 위한 일시 파병이라는 말과는 달리 25년 정도의 장기 주둔에다 병력 규모도 최대 1만 명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그루지야 작전 1차 목표 역시 체첸과 접경한 북부 판키시 계곡에 잠입한 아랍계 알 카에다 대원 색출에 있지만 작전 완료 시점이 언제인지, 얼마나 광범위할지는 미국과 그루지야의 협의에 달린 것이어서 장기 주둔도 배제하기 힘든 상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희망하는 친 서방 성향의 빈국 그루지야는 특히 1991년 옛 소련 독립 당시 분리주의 세력과 사실상내전 상태에 있어 미국의 군사 지원을 간절히 바라는 상태다.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서 1일 정상회담을 열 독립국가연합(CIS)들도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의 세력 확대를 보장한 대가로 경제 지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지역 안보와 테러 근절, 마약퇴치 등의 현안에 러시아보다 미국으로부터 더 적극적인 원조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그루지야는
독재자 스탈린의 출신지로 유명한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주변의 이슬람계 국가와 달리 라틴풍의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1801년부터 러시아제국에 병합돼 통치를 받아오다 1921년 소련연방에 포함됐다.
1991년 4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뒤, 92년 실정을 비난하는 반대세력의 유혈 쿠데타로 초대 대통령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가 물러나는 등 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1995년 구소련의 외무장관 출신인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72)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2000년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셰바르드나제는 자국내 압하스 자치공화국등의 분리독립 운동으로 95년과 98년 각각 폭탄테러를 당하는 등 내부적인 혼란에다 중립국 추진 선언 등 독자적 노선으로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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