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동중국해에서 해상 추격전이 벌어졌다.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과 소위 ‘괴선박’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며칠 후 한국의 TV 뉴스도 연일총격전의 생생한 모습을 일본 정부의 긴박한 대응 모습과 함께 안방으로 전했다.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에 의해 침몰됐다. 일본 정부는 침몰된 괴선박의 해저사진을 찍어 마치 새로 발견된 보물선처럼 보도하며 인양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이 사건이 중국해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중국 정부의 반응을 신중히 살피고 있음도 우리 언론에 자세히 전해졌다.
'괴선박' 이후 北-日 급랭
해가 바뀌어 1월29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선언한 ‘악의 축’ 발언이 한반도를 흔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참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던 상황에서나온 초강대국의 포효였다. 때마침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3국을 방문하는 그의 일정이 이미 발표된 상황이었으니, 한국에서 오랜만에 거세게 일고 있는반미 구호가 그 충격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한 달 정도의 시차를두고 생긴 두 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행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저의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오늘 3·1절을 맞아 한일관계의 지난 1년을 되새겨 보면 ‘괴선박’ 사건과 ‘악의 축’ 발언에서 분명한 공통분모를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와 일본의 ‘새 판 짜기’다.
지난해 한일간 최대 화제는‘교과서 사건’이었다. 그 경과를 재론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왜곡 교과서’를 0.03%만 채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결정을9·11테러후인 10월 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내렸다는 데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 테러 성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일 양국이 외교력을십분 발휘한 것이다. 당연히 일부 역사학도의 눈에는 가칭 ‘역사교과서 공동연구기구’를 둘러싼 신경전이 여론을 위한 면피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일협력, 日에 힘 줄수도
더구나 1998년의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 양국의 군사협력은 착실히 확대돼 왔다. 한일 혼인에 미국이 주례를 서는 꼴이다.
이웃 나라 군대와 사이 나쁘지 않게 지내는것은 좋으나, 한국의 태도가 자칫 ‘자위대를 일본군으로’라는 일본의 구호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 내에서는 전쟁포기와 전력 보유를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제9조)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웃 일본의 군사력이 강해지는 데 대해 우려나 시기심을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남북한이 냉혹한 군사 대치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음에도 오히려 남의 일로 여겨왔던 군축이나 전수 방위 등에대한 인식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북일 관계는 지금 빈사상태에 가깝다. 조총련계 신용조합에 대한 일본 경찰의 본격 수사와 ‘일본인 행방 불명자’에 대한 북한의 조사 중단 발표 등으로 양자관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괴선박에 대한 대응에서 부시 대통령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자신의 지지 의사를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대북 경고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표명하지 않았다.
남북 화해무드 우리손에
‘악의 축’이라는 국제적선문답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더 심한 발언이 이어지더라도, 남북간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추진력의 대부분은 당연히 우리에게 있다.
괴선박이 북한 선박이건 아니건 영원히 동중국해의 바다 속에서 잠들었으면 한다. 미국의 ‘악의 축’ 발언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한 것과 같이 괴선박 사건의 진상이 동북아 현상을 긴장으로 되돌리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종문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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