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ㆍ현대 경제사 연구의 태두인 안병직(安秉直ㆍ65)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일본의 대학 교수로 초빙돼 새로운 학문활동을 시작한다.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맹아론’, 일제시대의 ‘민족자본론’ 등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기존 근대사 연구 패러다임을 강하게 비판해온 안 교수로서는 노년에 일본에 정착함으로써 학문의 자세에서도민족주의의 틀을 벗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안 교수는 3월 1일부터 일본 후쿠이(福井) 현립(縣立) 대학교 대학원에서 특임교수 자격으로 한국 근대사를 강의할 예정이다.
동아시아사를 공동연구했던 전임 가고시마(鹿兒島) 국제대학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교수가 적임자로 그를 추천했다.
열악한 한국의 대학 상황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두 배가 넘는 연봉과 한해 2,000만원의 연구비를정년(70세)까지 약속했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안 교수는 현재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 후문 인근에 ‘낙성대연구실’이라고 이름 지은 개인연구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했지만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기반을 심어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격한 경제개발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안 교수의 일본행은 1986~87년 도쿄(東京)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시절 이후 두번째. 그는 당시 일본에서의 강의를 통해 국민 감정에 호소하는 민족주의로는 보편적인 학문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안 교수는 국내 학계에 대해 “의식과잉과 정치의식화에 젖어 있다”며 “사학은 무엇보다 실증에 기반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친일 잔재 청산이나 통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이 당면한 현재의 과제에 시선을 둔다면 조선 후기, 일제시대, 해방 이후를 그 정치ㆍ경제체제 여하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바라볼 수 있도록 경제성장사 연구를 해야 한다.”
안 교수는 이를 위해 “일본 현지에서 일제시대의 통계 자료를 모아 그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나의 문제 제기를 본격적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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