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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버스, 정류장…상처받은 영혼들이 만나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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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버스, 정류장…상처받은 영혼들이 만나는 그곳

입력
2002.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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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정류장’ 사이에 쉼표가 있다.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감독 이미연)이다. 두개의 공간이란 이야기이다. 그리고 쉼표는 둘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의미한다. 버스는 정류장으로 올수 밖에 없고, 또 정류장을 떠난다. 그래서 정류장은 만남과 기다림의 공간이 된다.서른 두 살의 노총각인 학원강사 재섭(김태우)과 열 일곱 살 여고생 소희(김민정)에게 버스정류장은 상처와 고독, 진실한 인간관계를 이어보려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늘 그곳은 비어있고 어둡고 비가 내린다. 그곳에서 재섭은 버스를 타고 또 다른 자신만의 어두운 공간인 집(방)으로 돌아간다.

작가 지망생인 재섭은 늘 혼자이다. 그는 속물적 근성과 타락의 어른 세계를 부정한다. 스스로 의식의 성장을 멈추고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다. 소통의 차단.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의 효섭(김의성)처럼 그는 자기 맘대로 옛 애인의 이름을 붙여준 창녀와의 섹스를 반복하지만 위안보다는 그럴수록 더욱 세상과 멀어져 간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환멸은 소녀 소희에게도 있다. 수영강사와 바람 난 어머니,뇌물 먹는 공무원인 아버지로부터 상처받고 중년남성과 원조교제를 한다. 남자는 소녀에게 ‘사랑’을 말하지만, 소녀에게 섹스는 자포자기이고, 거짓일 뿐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영혼이 만난다. 어느날 재섭의 학원에 수강생으로 온 소희가 조심스럽게 재섭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영화는 그 순간까지를 두 사람의 시점으로 묘사한 후, 소통의 과정을 조금씩 조금씩 진전시킨다. 그리고 처음 버스에서 떨어져 았았던 두 사람은 마지막 버스에서야 나란히 앉게 되고 소녀는 남자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영화에서 32세와 17세의 사랑을 막는 것은 사회적 금기보다 자신이 쌓아 놓은벽이다.

그 벽은 끝없이 망설이고, 서로의 진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더 큰상처(소녀의 임신중절)를 겪고, 그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부서진다. ‘버스, 정류장’은 이미연(39)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감독은 프랑스 영화학교 ESEU에서 연출을 공부했지만 정작 영화 입문은 ‘조용한 가족’ 과 ‘반칙왕’의 프로듀서로서였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명필름 심재명대표와 대학(동덕여대 국문과) 동기동창인 그는 데뷔작에서 섬세한 영상과 억제된 감정으로 조심스럽게 금지된 사랑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조심스러움은 금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매력적인 인물과 상황설정,주제에도 불구하고 인물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어서인지 영화는 내내 멈칫거리기만 한다. 때문에 ‘버스, 정류장’은 마치 노선버스만큼이나 관습적이다. 재섭과 매춘부의관계, 재섭이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반응, 재섭의 기다림과 소희에게 일어난 일, 무게를 털어버리려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코믹한 대사의 남발이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남자의 통곡조차 ‘파이란’과 달리 영화적 제스처로 느껴지는지 모른다.3월8일 개봉.15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tjpar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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