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의 동북아 3국 순방을 지켜본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을 법하다.오랜 우방 한국과 전에 없이 서먹한 감정을 나눈 미국대통령이 서울보다 베이징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야릇한 것이다.
중국이 21세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유일한 나라이고, 이 때문에 미국이 미사일방어(MD)계획 따위로 견제한다는 이론을 떠올리면 의문은 커진다.
부시의 중국 포용정책
사리로만 따지면, 부시 대통령은 중국에서 문전 박대 받아 마땅하다.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규정한 국방 정책을 내놓고, 체제와 인권을 노상 시비한 그를 중국인들이 반길 일은 도무지 없을 듯 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부시 방문을 앞두고 죽(竹)의 장막을 처음 헤친 닉슨 대통령의 상하이코뮤니케 30주년을 성대하게 자축, 이를테면 첫 사랑의 기억을 일깨우는 모습을 보였다.
부시도 정상(頂上) 만남에서 마냥 우호적인 것은 물론이고, 인민들과도 스르럼 없이 어울렸다.
만리장성관광 길에 수학여행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고, 베이징 칭화(淸華) 대학생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 모임을 가졌다.
시비하던 인권과 종교 자유 등은 원칙적 언급에 그쳤고, 강력하고 번성하는 중국의 출현을 환영한다는 수사마저 남겼다.
이 베이징의 겨울연가(戀歌)를 시샘만 할 계제는 아니다. 얽힌 사연을 헤아리는 것이 버림받은 심정을 추스르는데 도움될 것이다. 그러자면 중국의 첫 사랑 상대 닉슨의 3각 외교 전략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인도차이나 개입의 참담한 유산을 물려받은 닉슨은 냉전 시대를 지배한 이상주의 외교를 벗어나, 국익에 입각한 현실주의 외교를 추구했다.
소련과 겨루면서 동시에 중국을 고립시킨 전략이 국력만 소모시킨 어리석음을 떨치려 했다.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과 화해, 소련의 위협에 함께 맞섬으로써 아시아에서 3각 세력 균형을 이루려 했다.
이를 위한 중국과의 동거 약속이 바로 1972년 2월의 상하이 코뮤니케다. 두 나라 모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세력의 패권 장악을 공동 저지한다는 약속이었다.
30년 세월이 흐른 마당에 무슨 첫 사랑 타령이냐고 말할 이들은 상하이 코뮤니케를 기초한 헨리 키신저의 냉전 종식 후 국제 정세진단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키신저는 전통적으로 국익 외교를 펼친 중국이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정세 안정, 러시아와 일본, 인도가 도사린 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위해 미국의 잔류와 개입을 환영한다고 보았다.
다만 미국이 중국의 권위와 체면을 해치지 않고, 체제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미국 외교의 알트마이스터(Altmeister) 키신저에 의하면 미국도 중국의 구애에 화답하는 것이 국익에 어울린다.
유일 초강대국도 이질적 세력과 이념이 경쟁하는 아시아에서 일방적 패권을 추구할 수 없고, 욱일승천하는 중국과 암묵적으로 전략적 협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대 테러전쟁을 명분으로 중앙 아시아 등에서 러시아 및 우방과 함께 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직접 상대해서는 세계 경제질서편입 등의 호의를 베풀고 있다.
언뜻 모순되지만, 키신저가 권고한 비스마르크 류의 공세적 세력균형 외교의 요체는 여러 나라와 중첩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익외교에 한반도 소외
어쨌든 문제는 미국이 일방적 패권과 세력균형, 어느 쪽을 추구하든 간에 북한뿐 아니라 우리까지 소외되는 상황이다.
키신저는 국익외교가 도덕적 무장해제로 인식되면 안팎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부시가 북한 등 ‘악의 축’ 타도를 외친 것은 이 경고를 좇아 국익 추구에 도덕적 명분을 덧씌운 셈이다.
결국 베이징의 겨울연가는 한반도가 강대국 체스판의 희생마(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확인시킨현실의 드라마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