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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 라이프] 마음까지 녹여준 캐디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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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 라이프] 마음까지 녹여준 캐디의 정성

입력
200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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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연습장에 도착해 클럽을 꺼내 보고서야 알았다. 클럽마다 그립이 신문지로감싸져 고무밴드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주 정성스럽게. 전날 골프장에 갔다가 비를맞았는데….그 날의 골프는 이러했다. 파4인 첫 홀에서는 세컨드샷이그린 주변의 벙커에 빠져 보기. 그러려니 생각했다. 파3인 두번째 홀. 티샷이 벙커로 들어간 데다가 스리퍼팅을 해 더블보기. “허참!”하고 웃어넘겼다. 파5인 세번째 홀. 티샷이 또 벙커에 들어갔다. 스리온을 했으나 또다시 스리퍼팅을했다.

긴장되기 시작했다. 두번째 홀부터 내기가 시작됐기때문이다. 세 명의 동반자 가운데 두 분에게는 각 16점, 나머지 한 분에게는 8점을 주고서. 뿐만 아니라 두번째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했을 때동반자중한 사람이 버디를 잡는 바람에 겨우 두 홀을 돌았음에도 골프를 한 이후 가장 많은 돈을 잃게 됐다. 동반자들은 하나같이 “소 변호사의 돈을 땄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3번홀에서 퍼트를 하려 할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9번홀까지 빗속에서 라운드를했고 후반들어서도 종종 비를 맞았다. 그립이 비에 흠뻑 젖었다. 7번홀부터는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이 곱아서 클럽 컨트롤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머지 15홀동안 3언더파를 기록했다. 물론 3번홀까지 사이에 잃었던 돈도 모두 찾아왔다. 그처럼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기까지는 캐디의 도움이 엄청 컸다.

겨울비 속에서 6번홀을 지나자 유달리 추위를 잘 타는 나의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늘집에 들렀으나 별로 효험이없었다.장갑을끼지 않았던 오른손은 동상이라도 걸린 듯 벌겋게 변했다. 물에 빠진 쥐새끼 모습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나에게 캐디는 손가방에서 자기의털장갑 한 짝을 꺼내 주었다. 또한 10번홀을 들어가기 직전에는 뜨거운물 한컵을 가져다 주었다.

10번홀에서 티샷한 볼이 다시 벙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른 사람이 티샷하는 것을지켜보고 있는데 캐디가 어디서 가져왔는 지 따끈따끈해진 캔음료를 건네주면서 “꼭쥐고 다니면 곱은 손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라운드를 마치고 라커실에돌아오기 전 캐디피를 지불하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런 연후에도 캐디는 혼자서 물에 젖어 있던 그립을 모두 신문지로 감싼뒤 고무밴드로 묶어서 골프백에 담아 놓았던 것이다.

한 주일을 새로 시작하던 월요일 아침. 젖은 그립을 갈무리하여 준캐디에게 뒤늦게나마 감사하면서 생각했다. “구린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당신들이 버티고 서있는 한 세상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곳인 것이야!”

소동기 변호사

sodong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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