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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대화와 설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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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대화와 설득이 없다

입력
200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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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수방사 예하부대의 초병 피습사건은 충격적이고, 또 상징적이다.충격인 것은 수방사가 어떤 부대인가 하는 점에서이고, 상징적인 까닭은 ‘마지막 1년’을 남긴 김대중 정부의 곤고한 현실과 어딘가 어울리는 장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방사는 글자 그대로 나라의 심장인 수도를 방위하는 군 정예조직이다. 오랜 군부세력 통치 아래 살아온 국민에겐 수방사 장병들의 대통령 근위대로서의 위세가 낯설지 않다.

그들은 가깝게는 고궁에 터잡은 막사나 북악 인왕산 능선도로 같은 길녘에서 수도 서울의 독특한 ‘풍경’, 그 한 장면을 이뤄왔다.

어느 날 밤 철조망이 잘려나가고 담이 뚫리고 초병이 칼에 찔리고 총까지 빼앗기는, 적어도 그렇듯 얼빠진 군대는 상상할 수가 없다.

문민-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군기가 그만 통째로 빠졌다 한들 이렇도록 허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무슨 무슨 ‘게이트’들이 이 나라 권력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과 검찰과 국회와 또 어디 어디 걸리지 않는 곳 없이 연루의 그물을 치고돌다가, ‘아태재단’에 이어 ‘아들들’까지 거명함으로써 갈 데까지 다 가버리는 권력형 부패, 그 끝없는 의혹의 소용돌이를 닮았다.

아무리 레임덕 현상이라 하더라도 험악한 부정적 평가만이 긍정적 ‘업적들’까지 압도하는 이런 경우는, 보기에 딱하다.

김대중 정부 4년을 ‘기념’하는 날에, 대규모 공기업 파업사태는 시작됐다. 상징으로서의 조건이 더 잘 구비된 셈이다.

파업사태에 이른 핵심적인 쟁점은 공기업의 민영화인 듯하다. 민영화가 불가피한 정황과 정부쪽 논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불가피한 일에 직면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불가피한 일을 추진해 나가는 방법이다.

민영화가 고용불안을 초래한다고 믿는 노동자들에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설득수단은 충분한 대화뿐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다른 방법들에 앞서 그것이 우선해야 한다. 노조측이 “정부는 노조측과 대화하려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정상적인 수습의지를 갖고 있는게 아니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민영화가 최선인가 하는 데도 이의를 갖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전혀 엉뚱한 비전문가들에게 공기업 경영책임을 맡기는 ‘낙하산 관행’에 대한 반성이나 시정이 없는 정부의 공기업 정책이, 더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정치인 출신이거나 정치적 보직에서 일하던 사람이 고도로 전문적인 CEO가 맡아야 옳은 경영자의 자리를 오로지 정치적인 이유로 타고 앉아서, 그 공기업을 이 놀라운 경쟁력의 시대에 걸맞게 제대로 ‘경영’할 수가 있겠는가.

사리가 그런데도 낙하산 투하는 오늘도, 또 내일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지금 옵션이 많지 않아 보인다. 선택과 집중이 그래서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것은, 거의 하나 뿐인 돌파구일 것 같다.

발뿌리에까지 다가온 부정부패를 정권과 개인의 명예, 아니 나라의 명운을 걸고 도려내는 것이다.

아픈 기억인 ‘옷로비’ 사건 때처럼, 혹시라도 감싸고 싶은 생각이든다면 그럴수록 더 도끼로 뿌리를 치는 행동만이 역사에 바른 길이다.

파업사태를겪는 시민들은 지금 불편하고 괴롭다. 그리고 불안하다. 새삼 깨닫는 사실은 지나간 4년 김 대통령의 드러난 ‘정치’에 대화와 설득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화와 설득에 있어서 그는 능력을 인정 받은 정치인이었으나, 그 능력이 대통령으로서 발휘된 것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불가해한 일이다.

세상은 다소 시끄러운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국민은 남은 1년을 살아갈 것이다.

정달영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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