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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1세기 소설화 조정래씨 "1,200명인물 모두에 내혼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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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1세기 소설화 조정래씨 "1,200명인물 모두에 내혼담겨"

입력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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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상 남과 북이 갈렸다는 사실을 5분만 생각해 보자. 이데올로기가 끝났다는 시대에도 한국 사람은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써야 한다.미국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역사’도 종말을 고했다고 주장했지만, 분단이 계속되는 한 한국의 역사는 종언을 고할 수 없다.

소설가 조정래(59)씨가 한국근현대사를 소설로 옮기기로 마음먹은 것은 박정희 정권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70년대 후반이었다.

그는 1983년 ‘태백산맥’(전 10권)의 첫 장을 쓰면서 그 결심을 실천했다.

‘태백산맥’을 통해 해방 공간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짚으면서 분단 이데올로기를 파고들었던 작가는 두번째 작품에서그 상처의 아래쪽을 더듬었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아리랑’(전12권)이었다.

조씨가 이제 ‘한강’(전10권ㆍ해냄 발행)을 완간함으로써 민족사 1세기를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일단 마무리됐다.

1959년 겨울 중학생 유일표가 고향 강진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 ‘한강’은 20년이 지나 도시산업선교회 일을 하게 된 유일표가 5ㆍ18 직후 열차를 타고 광주로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통찰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 광주 혁명의 소설화는 후배 작가의 몫”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한강’에서 조씨가 천착하는 것은 여전한 분단 상황이다. 분단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덫을 놓았다.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유일민과 일표 형제, 그 딱지 때문에 주먹 세계로 뛰어든 서동철, 정권이 바뀌는 대로 능란하게 변신하는 국회의원 강기수, 대기업 오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건설회사 사장 박부길, 월남전 참전 군인 문태복, 서독 치매병원 간호원 김광자 등 ‘한강’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모두 분단의비극이 스며 있다.

1960~70년대 군사 독재의 폭력과 압제, 경제 개발을 위한 무분별한 속도전은 동강난 조국의 현실과 필연적으로 부딪쳤고 상처를 깊게 했다.

작가는 한편으로 “소설속에서 악한 사람을 만들어 내면서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민족의 수난사가 그렇게 몰아갔을 것”라고 말한다.

작가가 ‘한강’에서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만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대치된 상황에서 계속되는 남쪽의 분열이다. 절박하게 풀어야 하는 통일의 과제에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현실에 작가는 분통을 터뜨린다.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갈려서 살아야 한다는 건지.” 그 자신 갈등으로 빚어진 차가운 시대를 겪은 작가다.

‘태백산맥’ 때문에 1980년대 중반부터 갖가지 괴롭힘을 당했다. 1994년 반공단체들의 ‘이적성’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는 아직도 미해결 상태다.

“작품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죽기를 각오하고 매달린 만큼 내가 형상화한 소설의 현장에 확신을 갖고 있다”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에서 그가 그린 인물은 1,200여 명에 이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소중하다면서도 그는 “특히 ‘한강’의 강숙자 같은 인물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국회의원 강기수의 딸인 강숙자는 입시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교양이 풍부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다.

“모두 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태백산맥’의 소화처럼 이상적인 여성보다는, 인간미가 있는 여자에게 정이 간다”고 말하면서 작가는 웃는다.

32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작가는 20년 동안 세상과 절연했지만, 그렇게 쌓인 책은 세상과 소통한다.

그는 “앞으로 일흔 살까지 중단편과 장편 한두 권, 손자를 위한 동화, 수필, 문화비평서 등 10권 정도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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