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각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안은 당초 중앙선관위가 정치권에 제안했으나 반대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이 그 동안 입법화 시기를 미루어 온 것이다.
이번에는 부당한 정치자금을 일체내지 않겠다는 전경련의 결의에 뒤이은 행정부의 입장표명이리서 입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안이 입법화한다면 올해에는 작년의 17조원보다 법인세가 더 많이 걷힐 것이므로 1,7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정치권에 제공될 것이다.
지금도 정당에 대해 보조금을 주고 있고 양대 선거가 있는 올해는 그 금액이 1,138억원에 이를 것이므로 이름을 바꾸어 좀 더많은 돈을 지원해준들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법인세의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쓰자는 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적극 찬성하고 있고 그 동안 유보적 태도를 보이던 민주당도 행정부가 총대를 메어준다면 찬성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이안에 대한 정치권의 강한 지지도를 엿볼수 있다.
정치자금을 내는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되고 돈줄을 쥐고 있는 보스에게 마음에도 없는아부를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으니 정치가로서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갖가지 음성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내느라 편법을 써왔던 재계로서도, 이제 정부가 기업이윤의 일정 부분을 정치자금으로 거두어 정치권에게 일괄해서 제공하는 중개인 역할을 하겠다니, 그에 반대할 이유가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의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자는 방안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옳지 않다.
첫째,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 안이 시행되어 정치자금까지 받게된다면 지금도 견제능력이 약한 정치권이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주권재민의 원칙에 어긋난다. 국민의 의사를 얼마나 잘 대변하는가와 무관하게 세금이라는 형태로 정치자금을 강제로 내야 한다면 정치권에 대한 주권자의 통제력은 매우 약화될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까지도 똑같이 도와주도록 강요 당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셋째, 정치인들에게 잘못된 유인을 제공하게 된다. 정치를 얼마나 잘하는가와 직접 관련이 없이 지원금이 정해지면 정치발전을 통한 국리민복의 증진보다는 소모적인 정쟁만 심화할 우려가 있다.
넷째, 세금으로 정치자금을 충당하는 방안은 재정 건전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국회의원에게 월급을 주거나 선거관련 비용을 국고에서 대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외의 정치관련 비용까지 국고에서 대주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활동은 공공재도 아니고, 사회간접자본도 아니며 그렇다고 복지지출의 지원 대상도 아니기 대문이다.
다섯째, 기업경영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행위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 정치자금 지원액을 늘리기 위해법인세율을 무리하게 올린다거나, 시장원리에 반하는 기업지원조치를 남발한다거나, 망해야 할기업을 억지로 살리는 일을 막기 어려워진다.
또한 기업에게서 정치자금을 내지않을 자유를 박탈하며, 내려는 경우에도 대상을 선별해서 지원할 수 없게하고, 이익을 많이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원하는 금액 이상으로 정치자금을 내도록 강요한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수수를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병폐를 치유하려면,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기업은 경영 투명성을 높여야한다.
그래야만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정치권의 요구와 기업의 필요성을 함께 줄일 수 있다.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법인세를 떼어내어 정치자금으로 쓴다고 해서 검은 돈의 수수가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생사 여탈권을 갖고 있어 정치자금을 내야만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재계의 공개적인 다짐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순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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