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하늘과 강물의 경계가 흐릿해진 수평선, 그 수평선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한 숲과, 물에 비친 숲 그림자….하늘에는 구름 한 점, 강에는 물결 한 자락 없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펼쳐진 광활한 ‘양수리’ 풍경이다.
미니멀리즘 작업으로 산수화보다 더 강한 인상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온 이인현(44) 한성대 회화과 교수가 3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회화의 지층’전을 연다.
1996년 제10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가 10여 년 동안해온 미니멀리즘 작업 중에서 가장 회화성이 강한 작품만 고른 것이다.
전시작 30여 점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다. 먼저 캔버스를 두른 길다란 각목에 ‘프러시안 블루’라는 파란 색 유화물감을 흠뻑 적신다.
그 다음 세로 120㎝, 가로 360㎝짜리 대형 캔버스의 중앙에 각목의 모서리를 살짝 댔다가 떼면 작업끝이다.
이와는 반대로 물감을 칠한 캔버스에 각목의 모서리를 댔다가 이 각목 2개를 위아래로 붙여 전시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물감이 묻은 다음에는 작가가 개입할 틈이 없다.
이후에는 물감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대형 캔버스(또는 각목)에 불규칙하게 묻은 일직선의 물감은 수평선이 되고, 그 수평선에서 출발한 물감은 양 수직 방향으로 번져나가면서 서로 다른 모양의 숲과 그림자를 만든다.
물론 여백은 하늘과 강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풍경을 ‘양수리’라고 불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닙니다. 제 관심은 오히려 물감의 물성(物性)에 있습니다. 기준 선을 중심으로 정확히 대칭으로 펴져나가는 물감의 성질이,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닮지 않았습니까?”
작가는 이처럼 회화의 바탕이되는 물감의 성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 제목을 ‘회화의 지층’전이라고 붙였다.
구상이든 추상이든, 하나의 회화작품은 자연을 닮은 물감의 속성으로 인해 관람객에게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번 작업은 학창시절 노트에 번진 잉크자국을 ‘확대’한 것일 수도 있고, 호수에 떠있는 섬의 모습을 ‘축소’한 것일 수도 있다”며 “작품을 보고 어떠한 이미지를 가슴 속에 품는가는 전적으로 관람객의 자유이지만 물감과 자연의 유사 관계에도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02)735-8449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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