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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올라갈 때 못 본것

입력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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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못 본

그 꽃

설악산 백담사 어귀의 조그만 화강암 비석에 새겨진 고은(高銀)의 시다. 작년 가을 등반 길에 우연히 이 글을 보았다.

백담사라는 배경덕분인지 그냥 책에서 읽는 시와는 그 느낌의 폭이 달랐다. 이 시가 무슨 생각을 담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불교적 깨달음을 등산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유추해 본다.

등산과 인생은 닮은 꼴

대여섯 단어밖에 안 되는 짧은 싯귀지만 함축하는 의미는 책 한 권으로도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또 사람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시를 통해 느끼는 생각이 다를 것이다.

올라가는 인생의 산과 그등정 코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결론은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본다'는 일이다.

실제로 산에 가보면 같은 등산로를 택해도 올라갈 때 볼 수 없었던 꽃을 내려오면서 새삼 발견하는 일이 많다.

안개에 가려 못 볼 수도 있고,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가파르고 험해서 우리의 마음이 그런 것을 볼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

그 보다는 정상정복이라는 꿈에 도취돼 주위의 다른 것들을 무시해 버리는 수도 있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사람은 하산하면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야생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인생 등산은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나이가 들어 삶을 정리하기 시작할 때가 됐거나 혹은 자신이 참여했던 큰 일이 끝나 갈 때, 즉 하산할 때 깨달음이라는 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 "꼭 그렇게 처리하지 않아도 됐었는데..."하는 회한이 남는다.

물론 깨달음 자체에 남모르는 희열을 느끼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세속의 삶에선 깨달음이 곧 기쁨은 아니다.

개인적인 삶도 그렇지만 공인(公人)도 마찬가지다. 국정을 맡은 사람이나 기업을 책임진 사람도 등산길을 가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오르는 등산길은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하산 길은 더욱 위험하고, 내려올 때 보는 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이 하산길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지 모른다.

지금 김 대중 대통령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그 연유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을때 김 대통령은 말 그대로 정상에 서 있었다.

정상이 높았기 때문인지 하산 길도 가파르다. 권력은 쥐고 있는 그날까지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해는 급격히 기울고 있다.

권력주변을 심각하게 오염시킨 비리로 길은 더욱 미끄럽다. 그의 등산로를 따라야 했던 국민들은 그가 이끄는 험한 하산 길에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어 있다.

김 대통령은 내려오면서 어떤 꽃을 보고 있을까. 그를 따라 하산하는 국민도 오를 때 못 보았던 꽃을 보고 있다.

리더는 하산길 생각해야

이제 김 대통령이 올랐던 정상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다시 산은 시끌벅적하다. 그들의 도전은 하나의 인생등정으로 그들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 중 한 사람 리더의 등정코스다. 구름 낀 높은 정상을 향해 걷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일행의 안전한 하산을 염두에 두고 정진하는 리더의 길일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일이 지나간 후에라야 사물의 가는 길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를 이끄는 사람은 예지를 통해 사물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각자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더욱 복잡하고 불확실해지고 있다. 남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은 올라갈 때 내려오는 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조직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리더십의 시대이기도 하다.

김 수 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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