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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국, 소음을 선호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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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국, 소음을 선호하는 나라?

입력
2002.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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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초 아내와 용평 스키장에서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2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본 스키장은 질서정연했다.매표소에서, 스키 대여장에서, 리프트 탑승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줄을 섰다.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질서가 지켜지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모든 일이 신속하게 진행됐고 나는 스키장에서 별다른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여전히 바뀌지 않았는데 바로 스키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우리 가족은 20년간 스키를 즐겨왔다. 나와 아내는 운동을 매우 좋아해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미국에 있는 스키장을 모두 다녀 보았다.

하지만 리프트를 타고도 귀에서 멍멍할 정도의 스피커 소음에 시달렸던 곳은 한국 밖에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한국인들이 랩이나 팝송으로 아름다운 산 속의 고요를 깨뜨려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용평에서 들었던 소음이 몇 데시벨(㏈)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내가 용평에서 겪어야 했던 소음은 한 사람의 청력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였던 것 같다.

아직 일본에서 스키를 타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스키장에서 음악 방송을 트는 것이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개의 경우 일본인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더 조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소음에 대해 더 많은 인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조용한 것 보다 소음을 더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상인들은 자동차에 스피커를 달고 다니며 주택가와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물건을 사라고 떠든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법적 제재도 가해지지 않는다. 길가 한구석에서 휴대폰을 판매하는 도우미들은 노래를 틀어 놓고, 마이크로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며 상품을 광고한다.

노동자들이 시위라도 할라치면 언제나 스피커 볼륨은 최대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까.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자연스레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소음은 소음을 부르게 마련이다.

내가 몇 달 전 공항에서 아내와 비행기 탑승을 기다린 적이 있는데 뒤편에 수다를 떨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몇 명 있었다.

바로 그 때 나는 내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놀랐는지 한 동안 조용해졌다.

한국에서 결혼식에 몇 번 가본적이 있다. 젊은 예비부부에게 신성하고 소중한 날인 결혼식에서 왜 친구들이 뒤에 모여 예식과정을 무시한 채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휴대폰을 가지게 되면서, 또 전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도 남의 전화 통화 내용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굳이 전화가 필요할까. 아마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전화 없이도 충분히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지만 분명 사람들이 아직 잠자리에 있을 때,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올해에는 속삭이듯 말하는 법을 배워보는것은 어떨까.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면 많은 긴장과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동시에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해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알란 팀블릭·영국인·전 마스터카드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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