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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완고한 안동양반들 포복절도 우스개 9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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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완고한 안동양반들 포복절도 우스개 90편

입력
2002.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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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해학'안동 사람’ 하면 완고하고 재미가 없어서 우스갯소리를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하겠다고 한다.

주민들이 대개 엄숙하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장손들인데다 남녀간에 얼굴 대하기를 피하는 이 고장 풍속도 선입관을 심는 데 한 몫 했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문예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운영하는 김원길(60)씨는 “안동의 경직된 삶 가운데에도 해학과 유머가 있다”고 말한다.

김씨가 안동의 내림 이야기를 모은 책 ‘안동의 해학’(현암사 발행)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증명해 준다. 저자가 전하는 안동의 우스개90편은 배를 잡고 구를 정도다.

안동의 골계는 타지와는 구별되는 쪽이다. 상민이나 중인 출신이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 대부분의 익살이지만, 안동의 우스개는 시골선비가 가난이나 제사를 소재로 자기 실수담을 읊는 경우가 많다.

제사를 소재로한 얘기 한가지. 안동 외내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제사장보기 꾸러미를 들고 장에서 막 나오다가 사돈을 만났다.

마음 놓고 회포를 풀려고 지나가는 청년에게 장보기 꾸러미를 맡겼다.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밤 늦게 집에 돌아왔더니 부인이 묻는다.

“제사 장보기는요?” “내가 젊은 사람에게 보냈잖은가?” “어떤 젊은이요?”한참 기억을 더듬던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단다.

“저는 나를 알고 나는 저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할아버지는 곤혹스럽기 이를데 없겠지만, 읽는 사람은 포복절도할 얘기다.

제물은 귀신의 음식이니 돌려주자는 친구들의 권유로 젊은이가 꾸러미를 돌려줬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가게 주인도 있다. 가전제품 대리점을 연 청년은 성격이 태평해 손님이 들어와도 친구와 바둑을 두느라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손님이 왔으니 일어나라는 친구의 말에 청년은 이렇게 태평하게 말했단다. “서서 파나 앉아서 파나 값은 같은데 뭘.”

호박에도 손 들어갈 틈이 있다는 데, 근엄한 안동의 삶을 틈틈이 비집고 나오는 해학은 읽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얘기마다 짧은 설명을 덧붙이는 김씨의 능청스러운‘군소리’도 즐겁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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