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배수아(37)씨는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 살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았다는 그였다. 그의 새 장편소설 ‘이바나’(이마고 발행)는 배씨가 독일에서 독자들에게 보내온 편지다.“그들이 살아간다, 라는 말을 나는 그들이 그 대가를 치른다, 라고 표현한다. 과오의 유무나 대상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설사 침묵을 가지고 있었다고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개인 개인이 갖는 일름의 변별성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이유 없이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K나 B등으로만 명명되는 ‘이바나’의 주인공들은 젊음으로 해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바나는 이 작품에서 10년쯤 된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기도하고, ‘집시의 표정을 닮은’ 몰락해가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나와 K가 함께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와 K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고 커피를 몇 리터씩 들이켜야만 일을 할수 있게 되자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이바나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여행으로 찾아가는 목표, 그것은 ‘침묵’이다. 레드 제플린의 ‘Going to California’만을수도 없이 되풀이 들으며 그들은 한밤의 산악지대, 개발계획이 취소돼 폐허처럼 된 해안가 마을, 황폐한 공장지대 등을 13개월 동안 2만5,000㎞를 여행한다.
이 이야기의 한쪽에 또 다른 한 쌍의 주인공인 남자 간호조무사 B와 그의 연인 산나의 이야기가 있다.
나와 K가 이바나를 타고 찾아가는 목적지는 침묵이다. 배수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되 침묵하고 싶어한다. 작가가 말하는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줄의 맨 뒤로 가서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줄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줄이란 질서이고 질서는 개인의 욕망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다.그들은 한때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불이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겠다는 것을 포함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이 문장이 아마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지 싶다.
‘기존의 소설 문법을 무시한 문단의 이단아’ 혹은 ‘영상세대 글쓰기의 전범’이라는 평가의 양극단을 달리던 배씨의 글쓰기는 이번 소설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인 것같다.
한국이라는 땅을 떠나 홀로 이방에서 몇달여를 생활하면 쓴 글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바나’에서 그의 그간의 글쓰기의 모호함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특유의 몽환적이고 음울하고 이국적인 이미지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작가는 그 자체로 세계라는 체계에 갇혀버린 우리의 일상을 덮고 있는 음울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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