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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현대 경제제도를 만든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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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현대 경제제도를 만든건 전쟁

입력
2002.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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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 퍼거슨 현금의 지배/류후규 옮김/김영사 발행/1만9,900원“돈은 세계가 돌아가도록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현대적 경제생활이라는 제도를 구축한 것은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쟁이었다. 성(性)ㆍ폭력ㆍ권력 등은 제각기 또는 이들이 한데 뭉쳐서 돈을 압도할 수 있다.”

영국 경제학자 니알 퍼거슨은 ‘현금의 지배’에서 성급한 경제결정론을 비판한다.

1700년 이후 최근까지 구미 강대국의 정치ㆍ경제사를 방대한 실증적 자료에 바탕해 분석한 이 책에서 저자는 국가의 성패는 ‘권력의 사각형(square of power)’에 의존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퍼거슨이 말하는 ‘권력의 사각형’이란 징세제도, 의회, 국가채무, 중앙은행이다. 근세 이후 구미 국가 형성과정의 동인은 전쟁을 위한 군비가 재정의 대부분을 점하는 ‘재정적 군국주의’였다.

이 과정에서 세무관료의 양성 필요성이 공교육제도를 발전시켰으며, 대규모 국채 발행이 회사채 및 주식의 발행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민간 자본시장의 확대ㆍ심화가 이루어졌고, 초기에 화폐 발행 등의 임무만을 부여받았던 중앙은행의 역할이 확장됐다.

이러한 경제제도의 구축이 의회제도에 의한 법치 확립 등 정치적 성숙 과정과 결합했다는 것이다.

퍼거슨의 주장은 이처럼 경제가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기본관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마르크스ㆍ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월러스틴, 홉스봅 등의 주장에도 반기를 드는 다원적 역사관에 바탕해 있다.

특히 이 책이 주목되는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역할을 보는 저자의 입장 때문이다.

그는 과거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에 영국이 담당했던 주도적 역할을,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미국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나친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불충분한 확장’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전통적 ‘고립 근성’을 비판하며 “딱딱한 껍질 속에 몸을 숨긴 달팽이의 모습에서 벗어나 세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재원을 지출하여야 한다… 세계를 더 나은 장소로 만들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한 국가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할 배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9ㆍ11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쳐, 부시 대통령의 ‘악의축’ 발언으로 급전한 세계 정세를 보면 퍼거슨의 주장은 강대국의 패권에 기초한 세계질서의 구축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듯이 읽힌다.

9ㆍ11 직전에 원저가 출간된 이 책은 그럼에도 경제와 정치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으로 고려해 세계사를 보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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