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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00 / 특별기고- 성적연연 말고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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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00 / 특별기고- 성적연연 말고 즐기자

입력
200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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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 종교적 회유의 목적으로 시작된 이교적 제전 카니발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분방한 광장적 삶을 맛보게 하는 해방구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들과 친밀하게 접촉하며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거리낌 없이놀고, 즐겼다. 카니발의 광장에서 그들은 제도와 규범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욕망을 풀어냈다. 그리하여 고단한 일상과 버거운 삶의 짐을 견뎌낼 수있었다.곧 축제가 시작된다.

이토록 설레던 기억이 얼마만인가. 세상 모르던 어린 시절, 허드레 것을 홀로 보물처럼 품고 느꼈던 짜릿한 희열. 처음 타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의 가슴 두근거림. 중요한 시험 앞에 인생이 선택되어 갈리는 것을 경험하면서느꼈던 날카로운 설렘의 통증. 그 모든 것이 시간 속에 흩어져 사라진 후에, 일상에 시달려 빛을 잃고 너절해진 후에, 무엇으로 다시 설렐 수 있으리라예감했던가.

나의 카니발이 그라운드에서 열린다. 거친 삶의 숲을 오로지 튼튼한 다리에의지해 달음질치는 고귀한 인간의 이상이 푸른 잔디 위에 펼쳐진다. 그들이 땀을 흘릴 때, 내 손아귀에도 질척한 땀이 고인다. 그들의 몸짓을 따라나는 울고 웃는다. 음습한 골목에서 홀로 실현되지 않은 욕망에 뒤척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햇살이 눈부신 광장에서 목청껏 내가 진정 원하는 무언가의이름을 부르짖어 부를 수 있다.

모두가 승리를 바란다. 자신의 팀이, 자신의 국가가 마침내 상대방의 골문에 날카로운 슛을 꽂아 넣어 그들의 그물을 뒤흔들기를바란다. 나 역시 그러하다. 오직 마음으로만 따지고 들자면 어느덧 전 국민의 염원이 되어버린 최초의 1승 달성, 16강 진출뿐이 아니라 8강 진출도모자란다. 하지만 한번쯤 격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승리하려 하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16강 진출을 바라는가.

월드컵이 인류 최대의 제전이 된 것은, 축구라는 경기가 단일 스포츠 종목으로는유일하게 세계적 제전을 치르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각 국가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창조적인 경기를 펼치는국가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아름답고 창조적이었던 전통과 기억을 만방에 과시하는 것이다.그래서 축구만큼 국민성이나 그 국가의 역사와 문화가 드러나는 스포츠도 없다. 내게 축구는 곧 가치의 스포츠이다.

당장의 승리를 위해 눈앞의 성과를 위해 선수들을 다그치고, 스태프들에게압력을 가하고, 그들을 불신하고, 성과지상주의로 내모는 행태는 곧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증거물이다. 과정을 충분히 즐기는 여유보다 결과에 집착하여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잃었던 쓰라린 기억은 이제 여기쯤에서 단절해도 좋지 않을까.

너무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그라운드를 달리는 선수들의 터질 듯한 심장이 내게 이식된 것만 같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그들을응원하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마침내 내 생을 사랑할 수 있을 듯한 뻐근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축제가 열린다. 그것도 우리의 땅에서. 그것만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가!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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