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은 민족의 색…스포츠에선 최고의 색'붉은 악마'가 '스포츠의 정치학'에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붉음에 대하여 이 사회가 묘하게 반응하던 거부감을 집단적으로 뛰어넘은 문화사적 쾌거다. '우리 어렸을 적'에 붉은 깃발 들고서 운동장에 나왔다면?'붉은 악마' 자체가 '공산 괴뢰'의 동의어였을 것 아닌가.
'레드 컴플렉스' 덕분에 50여년을 통제당하면서 '잃어버린 색'이 되었다.전세계 역사상 이같은 색깔 통제의 유래가 또 있었을까. 정작 우리 문화사에서 붉은색은 절대적이다. 태극기나 단청, 색동옷, 심지어 일편단심의 단심(丹心)에서 붉은색을 빼버린다면? 무슨 답변이 필요하랴.
붉은색은 청, 백, 흑, 황과 더불어 오방색의 하나. 본디 남쪽을 뜻하는 주작(朱雀)으로 재앙이나 악귀를 쫓는 주술색이다. 부적이나 인주가 붉은 주사인 것도 같은 원리다. 한국의 미를 흰옷, 백자 따위로만 정의 내림은 잘못된 미감이다.
민화를 예로 든다면, 그 강렬한 진채에서 붉음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국가 고위 관료의 관복에서 홍철릭 같은 붉은옷도 쉽게 확인된다.
붉음은 화(火)이므로 따스함 그 자체다. 민간심성으로는 복을 불러들이는 색깔이기 때문에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한국인이 발견해낸 아름다운 천연염색의 하나로 잇꽃(홍화)을 꼽는다. 진하게 물들이면 붉은색, 연하면 분홍색이된다.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오방에서 한 방향이라도 빼놓기 불가하다. 각각의 색깔은 방향과 장소를 뜻한다. 오방의 상호균형과 순환이 없다면 우리는 방향감과 장소감을 잃고 끝없는 방황을 해야 한다.
색깔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대중의 심리적인 자기검열장치를 작동시킨다. 색깔통제는 색으로 표현되는 모든 디자인, 더 나아가 문화산업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며 한마디로 '바보짓'이며 '밑지는 장사'다. 그런 점에서 붉은 악마는 자신들의 강렬한 도전정신으로 기성세대들 스스로 주눅들어 있던 색깔 금기를 보기 좋게 깨트렸다. 그네들이 선보인 금기 파괴를 전면수용하여 잃어버린 붉음을 보편화시킬 방도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중국인처럼 붉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중국 음식점을보라. 그러나 붉은색은 베이징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한 붉은색은 '평양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중국과 북한의 '독점'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무관심과 집단심리적 부담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많은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거리는 칙칙하다. 민간 부문은 그런대로 다원화되었으나 관공서는 회색빛을 벗어나려면 많이 노력해야 한다. 경복궁 기둥들은 모두 붉은색인데! 유치원 아이들도 노란 머플러는 하고다니지만 붉은 머플러는 '왠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붉은 악마들의 머플러는?
붉은 악마들이 머플러를 휘날리면서 응원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붉은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인데, 나는 ‘잃어버린 색깔’이 되살아나는 풍경으로 묘사하곤한다. 악마는 희생양을 전제로 하는 바, 붉은 피를 뿌리고 사육제를 집행하는 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현대 스포츠는 그 자체가 하나의집단적인 사육제이며, '스포츠의 정치학'이 구현되는 또 하나의 의례이다.
게다가 스포츠의 열정은 아무리 무어라 해도 붉은색을 당할 색깔이 없을 성싶다. 붉은악마의 재앙 쫓는 그 색깔이 우리 문전의 골을 막아주는 '지킴이색'이 되어줄 것이다.
'지킴이색' 덕분에 월드컵 성공이 보장될 것으로 믿어져서 공연히 기분 들뜨고만다. 역시 설레이는 봄날이다. 붉은 잇꽃으로 물들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봄날의 따스함 때문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