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하류 장단(長湍)만큼 역사의 변전이 심한 땅도 없을 것이다. 고구려 때 장천성(長淺城)군으로 불린 이 땅은 통일신라 시대에는 장단으로 개칭되었다.고려 때 단주(湍州)로 승격되었다가 멀지 않아 장단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조선시대에는 임강현과 합쳐 장림(長臨)군이 되었으나, 세종 때 또 장단으로 환원됐다.
큰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또는 중궁 묘 셋이 있다 해서 격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한 때는 개성부에 속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 광복 이후에도 역사의 물살은 거세었다. 194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개풍군 일부 지역을 병합해 이름이 장풍(長豊)군으로 바뀌었다.
6ㆍ25 이후 행정구역이 남북으로 갈리자 북쪽 지역은 금천군에 편입돼 황해북도에 소속되고, 남쪽은 파주군에 편입돼 장단면이란 이름만 남게 되었다.
장단의 중심지는 도라(都羅)산 아래 도라산리였다. 높이는156m에 불과하지만, 이 산은 임진강 하구 넓은 벌 한가운데 있어 옛날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꼽혔다.
■ 이 산 이름의 유래에도 역사의 이끼가 덮여 있다. 신라의 마지막 황태자 마의태자가 고려에 투항하는 경순왕을 만류하며 이곳까지 따라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고려에 귀부한 경순왕이 이 산에 올라 신라의 도읍지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 설도 있다.
어느 설이든 신라의 비운과 얽힌 것은 분명하고, 도라의 ‘라’가 신라의 그것임도 틀림없다. 고려 신라의 경계가 이부근이었음도 단순한 우연일까.
■ 휴전 이후 50년 동안 잊혀졌던 장단이 오늘 세계 언론의 초점으로 등장한다. 경의선 복원공사로 남측 최북단 역이 된 도라산 역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 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메시지가 발표되는 것이다.
남북 화해시대의 상징으로 경의선 복원을 서둘러 온 정부는 개성 턱밑의 이 곳을 화해 이벤트의 현장으로 부각시키기 위해부시를 이곳으로 초청하였다.
지난 설날 처음 실향민을 태우고 갔던 도라산 관광열차는 이제 일반에도 개방돼 이곳은 분단현장의 새 명소가 되리라. 그에 걸맞은 두 정상의 메시지가 기다려 진다.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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