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검찰총장은 취임시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쐬겠다"는 오랜만에 우리 국민의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지도자상을 되살려서 시원하다.고고한 선비답게 우리 검찰이 지금부터라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단호하게 나설 때가 온 것 같다.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선비답다'라는 평가와 으뜸가는 칭송이 아닌가.한국의 지도자는 선비다워야 한다.세종대왕도 국왕이전에 선비의 도를 닦았다.우선 청백 근검 후덕 경호 인의라는 덕목으로 자신을 닦고,선정 충성 준법이라는 국민을 이끄는 치인의 리더십을 길렀다.이 덕목들은 진부한 전근대적인 교훈만이 아니다.바로 오늘날 새 선비정신의 덕목으로 부활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조 510년 동안 218명의 청백리가 뽑혔는데,그들의 출신부처를 따져보면 오늘날 우리 정부의 청렴도와는 대조적이다.호조(재경부)에서 제일많이 나왔고,그 다음이 공조(건교부)이고 세번째가 형조(법무부)출신이다.과연 현재 이 세부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어떠한가.
각종 게이트에 시달리고 있는 검찰은 이것을 재인식하고 새출발해야 한다.전통사회에서는 민본주의적인 형조문화가 추상같고 공평무사했다.그래서 같은 유교권에서도 일본,중국보다 두 배의 정치생명을 유지할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의 검사들은 성격상 옥당 선비들이다.한림 선비가 사관이 되어 왕 앞에서 고개 숙이고 직필로서 국왕을 견제했다면,옥당 선비는 언관이 되어 국왕과 눈 높이를 같이하면서 직간하여 현실적인 비리를 경고했다.그들은 '벼락이 떨어져도,도끼로 목을 쳐도 서슴지 않고'언관의 기개를 발휘했다.참으로 성역없는 수사와 직간은 우리늬 빛나는 전통이었다.그 당당했던 사간원 선비의 기질이 우리 검찰 속에 되살아나야 한다.
일제시대 36년,냉전 50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오직 반공과 효율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그러다보니 우리는 서서히 전통적 형조문화와는 단절됐고,선비문화는 무참하게 땅에 떨어졌다.우리가 자랑했던 공직자의 청빈도도 전세계적을 최하위권으로 전락했다.
'살신성인 견리사의'의 선비정신으로 29세의 안중근의사는 우리 검찰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결단있는 선비정신으로 사법문화를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이동희 전 서울산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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