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수용과 독일 영화 살리기. 17일 막을 내린 올해 제52회 베를린 영화제는 이 두 가지 목표를 세웠고, 일단 산뜻하게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지난해 5월 새로 집행위원장을 맡은 프로듀서 출신 디터 코슬릭은 “영화가서로 다른 종교, 인종, 문화,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23편의 본선경쟁작과 수상 결과에 그대로 나타났다. 나치 문제를 다룬 영화가 4편이나 출품됐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에 존재했던 다양한 갈등을 풀어가는 ‘휴머니즘’ 영화가 많았다.
TV 영화 감독으로 세계 영화계에 알려지지 않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아일랜드 시위참사를 담은 ‘피의 일요일’이 황금곰상을 공동수상한 것이나, 독일 점령하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영화감독의 이야기인 ‘안전한 행위’, 호주 원주민 청소년의 문제를 다룬 ‘구름 아래’ 등이 부문상을 수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3대 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인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황금곰상을 준 것은 영화의 내용은 물론 형식에서도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럽 영화계는 통독 이후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던 베를린 영화제가 성공적인 대안을 찾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성은 빔 벤더스, 코스타 가브라스, 라세 할스트롬과 같은 거장과 김기덕, 톰 티크베르(독일)같은 젊고 파격적인 젊은 감독, 메이저와 독립 제작사까지 폭넓게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할리우드에 내밀었던 손도 거두어 들였다.
대신 베를린 영화제는 1960년대 뉴저먼 시네마 이후 자국 영화 국내 시장 점유율이 10%대까지 떨어진 독일 영화 산업의 부활을 선언했다.
과거 같으면 영화제 문턱에도 못 올 ‘롤라 런’의 괴짜감독 톰 티크베르의 ‘헤븐’을 개막작으로 선정했고, 독일 영화 5편을 본선 경쟁에 올려놓았다.
거기에 ‘독일영화의 전망’이란 특별 섹션을 통해 30대 젊은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코슬릭 집행위원장도 영화제 시작전부터 당당하게 “베를린 영화제의 또 하나의 목적은 독일 영화 산업의 발전과 정체성 찾기, 시장회복”이라고 밝혔고, 이를 위해 독일 정부도 영화제에 70억 원을 선뜻 내놨다.
자국 영화 없는 영화제는 무의미하며 영화제는 일차적으로 자국의 영화 성장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는 그것을 분명 ‘선언’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더욱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한국의 영화와 영화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나쁜남자’도 분명 독특하고, 계급 차이를 풀어가는 영화지만, 그 수단(폭력)이 지금 세계가 추구하는 것과 배치되기에 수상에 실패한 셈이다.
베를린=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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